아슬아슬 로맨스
1화
웹소설 작가 -
본문
1회. 아슬아슬한 밤
"악!"
발바닥에 큰 통증이 몰려왔다.
"아...."
제인은 심각한 통증 때문에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대로 더는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니 도망칠 수가 없었다. 맨발로 골목을 그렇게 내달렸으니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몸을 숙이고는 우측으로 보이는 더 좁은 골목으로 기다시피 하며 이동시켰다. 헉헉거리며 벽에 등을 기대고 보니 길고 날카로운 유리가 박혀 있었다.
"아...."
지금 빼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엄지와 검지를 가져가니 밖으로 튀어나온 유리가 살짝 잡혔다. 고통이 더 크게 파고들었다.
"좋아. 하나, 둘, 셋!"
이를 악물고는 발바닥에 박힌 유리를 잡아당겼다.
"으아...."
견딜 수 없는 통증이 그대로 몰려왔다. 집에서 무조건 밖으로 내달려 도망쳐 나왔으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핏물이 발바닥으로 흘렀다. 뭔가 동여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발바닥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아, 제발...."
하는 수 없이 웃옷을 벗었다. 오른쪽 팔 부위를 입에 물고 힘을 줘 뜯어내 발에 묶었다. 핏물이 옷 속으로 붉게 스며들어 갔다. 날이 제법 추워 옷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쪽 팔만 남은 옷을 다시 몸에 걸쳐 입었다. 일어나 보았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다. 하필 그때 자신을 뒤따라오던 놈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 정말. 하, 미치겠네!"
제인은 조금 더 깊은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한 덩치 하는 놈들이 골목을 내달려 내려왔다. 제인이 숨어든 골목으로 한 놈이 하필 들어서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놈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녀가 몸을 조아리고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왈, 왈.....
하필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씩 웃으며 걸음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더욱 조심스럽게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더는 돌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 어떡해."
놈의 발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왔다. 제인이 두리번거리며 보니 쓰레기더미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리로 다가갔다. 놈의 발소리가 더욱 가까워지던 순간 쓰레기더미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어딨어. 어디 있는 거야?"
놈이 다가와 서성거렸다. 제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쓰레기더미 틈으로 그녀의 쿵쾅거리는 숨소리가 새어나갈 것만 같았다. 놈이 쓰레기더미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을 사방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아 냄새...."
놈의 손이 그녀가 얼굴을 덮고 있는 쓰레기 봉지를 향해 다가오던 순간이었다.
히이웅....햐......
"이런 젠장. 고양이 나부랭이였어?"
고양이 두 마리가 담 위에 올라서서 서로 털을 곤두세운 채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리 안 가?"
하지만 두 고양이는 놈의 말엔 안중이 없었다. 더욱 털을 추켜세우고는 서로 달려들며 크게 싸우기 시작했다.
"아 정말..."
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냄새"
놈은 몇 발자국 뒷걸음 하다가는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가 버렸다.
"하....."
놈이 골목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는데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조심스럽게 쓰레기 봉지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욱!"
온몸에 쓰레기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일단 놈들에게서 멀리 도망치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했다. 몸에 힘을 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걸음 할 때마다 발이 지끈거리며 쑤셔댔다.
겨우 골목 끝으로 다가섰다. 가로지르는 골목에 고개를 내밀고 좌우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휴....."
그녀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언덕길을 내려서기 시작했다. 어서 내려가야만 했다. 놈들이 언제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들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면 공원 끝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그 통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통로로 가기 위해 아픈 발을 이끌며 몸을 서둘렀다.
***
"뭐? 지금 나보고 직접 가서 인사를 하라는 거야? 나 강지헌이야."
"형, 아는데요. 박 감독님이시잖아요."
"하, 지가 박 감독이면 다야? 나 한류스타야. 알아? 내가 중국에 가서 팬 미팅만 해도"
지헌은 V 자를 그리듯 두 개의 손가락을 펴고 매니저인 규남의 코를 찌를 듯 디밀었다.
"몰라? 이마안! 이만 명이나 모인다고오!"
"아이 알아요, 형.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형."
"아는 놈이. 아는 놈이 일을 이따위로 해? 매니저란 놈이 일 이따위로 할래?"
"아....그럼 어쩌라고요. 절 봐서. 형이 한 번만 가서 인사드리고 와주세요. 네? 오백억짜리 영화래요."
"오, 오백억?"
지헌은 오백억이라는 말에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꿨다.
"아아아 됐다 그래. 나 안 한다고 해. 천억짜리도 아니고. 겨우 오백억에 무슨"
"한중 합작영환데요. 형이 안 하신다면 백주원한테 시나리오 갈 거래요."
"뭐? 백주원? 하... 미친! 백주원이 어딜 봐서 오백억 영화에 어울려? 오십억짜리 영화하고도 쫄딱 망한 거 몰라?"
지헌이 차 문 밖으로 튀어나오며 씩씩거렸다. 문밖에서 지헌의 눈치를 보던 매니저 규남이 뒤로 물러났다. 순간 규남의 전화가 울려댔다.
"예. 감독님. 어디시라고요? 아, 알죠. 압니다. 아니요. 가신답니다."
지헌이 입만 뻥긋거리며 "야 내가 언제?" 하고 시늉했다. 멀리 떨어져 전화를 받으라는 시늉도 이었다. 멀리 걸음 하더니 규남이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아직 시나리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간 거죠?"
지헌이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귀는 규남에게로 쏠려있었다.
"내, 내일요? 그러니까 내일 백주원 씨 만나기로 하셨다고요?"
지헌이 차의 문을 닫고는 무작정 규남에게로 달려왔다. 통화를 하고 있는 규남의 귀를 무작정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지금 간다고 해. 근처라며."
"지금 가신답니다. 예,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규남이 전화를 끊고 씩 웃으며 지헌을 바라봤다.
"차 타고 가셔야죠, 형."
"됐어. 가까이 있다며. 괜히 이 좁은 동네에 벤 타고 다니면 더 시끄러워."
"그렇긴 하겠네요. 그럼 걸어가요, 형. 가까운 데라니까요. 오늘 이 달동네 계단에서 찍은 화보 진짜 잘 나올 것 같아요. 왜 형도 어렸을 적에는 이런 데서 사셨다면서요."
"야. 너 그딴 소리 한 번만 더해 봐. 다시, 다시"
"아, 형은 외국 유학 생활을 마치시고... 곧바로 한국으로 오신...."
"됐어. 가자."
두 사람은 달동네의 비스듬한 언덕에 마련되어있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공터에 벤을 세워둔 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규남의 뒤통수를 툭툭 건드리며 지헌이 "한 번만 그런 소리 더했다가는 매니저 잘려 버리는 수가 있어" 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지헌의 벤은 가로등이 서 있지 않은 공터 끝에 자리해 있었다. 멀리 가로등조차 고장이 난 상태였다.
화보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려 했는데 칸에서도 인정받는 박 감독이 근처에 와 있다며 지헌을 보자고 했다는 거였다.
제아무리 잘 나가는 감독이라도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하는 법이 없던 지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박 감독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적이 없었다. 거절할까도 했지만 기회를 놓치는 건 싫었다. 그게 실제 지헌의 속마음이었다.
***
"형. 저기요. 감독님 계시네요?"
"왜 이런 구석까지 오셨다냐."
"촬영 배경이 이런 곳인가 보더라고요."
"그래? 음! 음!"
지헌은 애써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고는 박 감독이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규남이 목에 힘을 주고 잘난 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지헌과 박 감독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아유, 감독님 안녕하세요?"
지헌이 애써 밝은 얼굴로 감독에게 인사를 건네자 규남이 긴 숨을 내뱉었다.
"아무튼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라니까. 아니 처음부터 알 수가 없는 인간이었지. 아니 갈수록 더 모를 인간이지. 아니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모를 인간이지. 뭐 쨌든 연기력 끝내준다!"
입을 비쭉거리며 규남이 지헌의 뒤를 따랐다. 지헌은 겸손한 표정을 지으며 박 감독에게 다가갔다. 지헌의 뛰어난 연기력에 규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
제인이 겨우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고장 난 가로등으로 인해 매우 어두웠다. 아주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지금은 공터로 쓰이고 있는 곳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발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통증이 심해 더는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을 서성이든지 아니면 이미 이 동네를 벗어난 모양이었다. 제인이 겨우 한숨을 내쉬고 공터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아. 겨우 계집애 하나를 못 잡다니. 대체 뭣들을 한 거야 이 새X들아."
대장으로 불리는 놈들의 우두머리가 길에 올라서 공터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돌덩이 피했더니 바위덩어리야?"
제인이 다시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놈이 공터로 들어서는 곳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휴대폰으로 손전등을 켜고는 사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제인이 뒷걸음 하다 지헌의 벤으로 다가섰다.
"거기 누구 있어?"
놈이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제인이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제인이 조심스럽게 차에 등을 기댔다. 놈이 공터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있으면 그냥 나와라. 그게 신상에 좋을 거다. 어?"
놈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하... 어떡해"
제인은 무작정 돌아섰다. 자신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도망가려고 몸을 비틀던 순간 벤의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는 게 어설피 눈에 들어왔다. 놈의 걸음이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제인은 조심스럽게 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뒷자리에는 옷가지들이 걸려있었다. 흔한 차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놈이 벤으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휴대폰을 벤 가까이 디밀었다.
"뭐야. 이거 연예인들 타고 다니는 차 아니야? 누구 차야?"
휴대폰을 창에 디밀고 안을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코팅이 되어 있어서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거기 누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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