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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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메이드

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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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편, 김태규는 좌석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서른, 적다면 적고, 많다고 하면 많은 나이다.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좋았던 그는 해외 유명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유학을 반대했다.

두뇌가 뛰어난 태규가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태규는 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그 일로 인해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 하지만 어제 아버지에게 온 전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했던 부친의 목소리는 다 죽어 가는 사람의 그것처럼 바뀌어 있었다.

‘한국에 와다오...’

아버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에 와달라고만 했다. 교수가 되기 위해 중요한 논문을 쓰고 있던 태규는 고민했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자식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던 것이다. 곧장 가장 빠른 비행기 편을 예약하고 날아왔다.

“한국에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문안을 위해서입니다.”

입국 수속 처에 앉은 아가씨가 물었고, 태규가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답변을 듣고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동정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규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여권을 받아들고 공항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가니 집에서 보내준 차가 대기 중이었다. 잘 빠진 세단이었다.

“도련님......”

“아저씨...”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버지 옆에서 평생을 바쳐 일을 도와준 비서였다. 태규는 그와 반갑게 포옹을 하고, 차에 탔다. 그는 아버지의 상태를 물었다. 비서는 백미러로 태규의 얼굴을 한차례 살피더니 입을 오물거렸다. 태규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도착했습니다.”

차는 잘 포장된 도로를 밟고 커다란 저택 앞에 도착했다. 태규는 차에서 내렸다. 유학을 가기 전 살던 집보다 훨씬 큰 집이었다. 혼자 살면서 이렇게 큰 집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이런 큰 집에서 혼자 사시다 보니 외로움 때문에 가지고 있던 병이 더욱 커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련님 이쪽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유럽에 있는 고성처럼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있었고, 내부에 2층으로 올라가는 커다란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를 돌봐주었던 유모였다.

“도련님!”

고풍스러운 메이드 복을 입은 그녀가 달려와 태규의 품에 안겼다.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유모를 진정시키기 위해 등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 주었다.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곧 진정이 된 듯 태규의 품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오랜만이야 유모.”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고왔던 얼굴이 고생한 탓인지 많이 상해 있었다. 태규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유모는 부끄러운 듯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대화를 나누며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는 짧은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태규는 아버지의 취향에 난색을 보였다.

“사람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도련님이 없으시니... 회장님께서 마음대로 고용인 숫자를 늘리셨습니다.”

유모의 말에 태규가 혀를 찼다. 껴들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는 이런 행동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재력을 쌓아두었고, 그를 낳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지게 된 유일한 취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모에 안내에 따라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지나치면서 본 메이드들보다 유달리 미모가 뛰어난 이들이 방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메이드장님 오셨습니까. 이쪽 분은..”

“도련님이시다.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실 테니 잘 모시도록.”

아버지의 몸 상태만 확인되면 다시 미국으로 떠날 생각이었던 태규는 유모의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부정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상황에 따라 잠시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미모의 메이드들은 유모의 말을 듣고 꾸벅 고개를 숙여왔다. 상의가 상당히 파여 있어서 하얀 가슴골이 다 보였다. 태규는 깜짝 놀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회장님. 메이드장님과 도련님 오셨습니다.”

“....들어와라...”

모기처럼 아주 작은 목소리가 문안에서 들려왔다. 도저히 호탕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태규는 입술을 꽉 깨물고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방 안에는 커다란 침대와 여러 가지 의료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태규의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

목이 막혔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정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태규의 아버지 김철규 회장은 마치 미라처럼 말라 있었다. 그의 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선들이 붙어 있었고, 위급 상황을 대비한 인공호흡기가 구석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리 오거라...”

오랜만에 본 아들의 얼굴이 반가웠는지 김철규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짓했다. 태규는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그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내일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태규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 어쩌다가...”

“..암이라고 하더구나..”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태규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화가 났다. 하지만 겉으로는 표출하지 않았다. 김철규는 유모의 도움을 받아 상반신을 일으켰다. 태규가 가만히 있으라고 말을 했지만, 그의 고집은 말릴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철규는 유모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명령했다.

“난 지금 당장 이 선들을 모두 떼어낼 생각이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료지식이 부족한 태규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의료 기구 덕에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을 떼어내겠다니. 사실상 생명 연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태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철규는 귀가 아팠는지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의사와는 이미 상의를 마쳤다.. 기계를 계속 꼽고 있어도 길어도 일주일이라고 하더구나... 더 이상 기계에 의존해서 숨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죽을 때는 사람답게 죽고 싶다.. 이해해 다오..”

“......”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태규는 실핏줄이 터져서 충혈이 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김철규의 주름진 얼굴에는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선들을 떼어냈다. 맥박을 체크하고 있던 기계가 삐이익- 요란한 소음을 냈다.

“..사실 널 부르지 않으려 했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괜한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 아들아.. 아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다오..”

김철규는 끝까지 사업가였다. 거부할 수 없는 협상 테이블에 아들을 끌어드린 것이다. 태규는 아버지의 부탁을 듣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몸 상태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규는 아버지의 말을 듣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회사를 부탁한다... 난 네가 내 뒤를 이어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그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는 편이 좋아요. 전 회사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괜찮다. 윤 실장이 널 도와줄 게야. 그래도 힘들다면 1년 정도 지나고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렴. 그리고 이 저택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

윤 실장은 아버지를 도와 회사를 키운 비서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태규는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말에 차마 부정을 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끝으로 김철규는 몸이 피곤해졌는지 태규에게 나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철규 회장은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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