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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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성근

이웃집 성근

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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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창 밖으로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고, 사위는 고즈넉하다. 자동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아파트의 주차장에 가끔씩 조그만 손전등의 불빛이 자동차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번갈아 비춘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한바탕 세찬 소나기가 내릴 듯 어두컴컴한 구름으로 가득하다.

드문드문 주차장 가운데 위치한 메탈램프의 밝기가 힘겹게 어둠과 대적하고 있다. 가끔씩 헤드라이트 불빛을 앞세운 자동차가 주차장을 몇 바퀴나 맴돌다 할 수 없다는 듯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로 들어서고 만다.

담배를 빼어 문 강성근은, 차가운 바람이 추위를 동반하고 달려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열기로 가득 찬 자신의 몸을 식히기 위해서는 그까지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드르륵…

강성근이 베란다 샤시를 열자 어디선가 똑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강성근 보다 아래쪽에 사는 사람이 거의 동시에 베란다 샤시를 연 모양이다.

요즈음 TV CF에서는 소리 없는 베란다 샤시가 매번 광고시간을 채우지만 아직 이 아파트에는 그런 샤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모양이다.

라이터돌을 돌려 담배에 불을 붙인 강성근은 맛있게 담배연기를 몇 모금 깊이 빨아 당긴다. 그리고는 재떨이에 장초를 짓눌렀다. 뻘겋게 타올랐던 그 장초는 수북히 쌓인 또 다른 장초들과 짝을 맞춰 그 속으로 몸을 숨긴다.

TV 리모컨을 가지고 한참이나 채널을 돌리던 강성근은 문득 시계를 올려다본다.

12시 30분.

시계의 작은 바늘은 똑같은 숫자를 하루 두 번씩 반복해서 가리킨다. 물론 그것의 의미는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주간이라는 것과 태양이 떠 있지 않는 시간, 즉 사위가 지금처럼 어두워져 있는 시간을 야간이라고 일컫기 위해 구분해 놓은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강성근은 다시 한번 물끄러미 시계를 올려다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TV 옆에 있는 조그만 서랍장을 연다. 열린 서랍장 안에는 비디오 테이프들이 빼곡이 들어 차 있다. 그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선택한 강성근은 "6-Head Diamond"라고 쓰여져 있는 비디오의 닫혀진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비디오의 입이 벌어지고 뱀이 쥐를 삼키듯 순식간에 테이프를 삼키자 디스플레이 화면에서는 조그만 기호가 번쩍이며 환하게 빛난다. 이내 또 다른 기호가 불빛을 반짝이며 "윙-"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TV에서 나오는 마감뉴스의 아나운서 멘트와 어울려 조용히 거실을 채운다.

테이프를 찾고 비디오에 밀어 넣는 동작을 하느라 한쪽으로 밀쳐 놓았던 리모컨을 재차 잡은 강성근은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나간다. 담배를 핀다고 열어 두었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는 리모콘의 우측 상단에 있는 녹색 버튼을 힘 주어 누른다. 그 녹색 버튼 위쪽에는 "TV/VTR" 이라고 인쇄된 비닐딱지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며 붙어있다.

버튼을 누르자 TV화면 우측 상단에 "비디오1"이라는 자막이 뜨고는 "으음, 으응…" 거리는 벌거벗은 여자의 신음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울려 퍼지며 거실을 가득 채운다. 조용한 거실에 갑자기 높은 톤의 여자 신음소리가 나와서인지, 장대근은 화들짝 놀라며 부리나케 리모콘의 음량조절 버튼을 눌러 볼륨을 10까지 낮춘다.

볼륨 소리가 급격히 낮아지자 강성근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흐르며 화면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강성근의 눈 안으로 물먹은 휴지 마냥 쩍쩍 달라붙어 들어온다.

화면을 온 신경을 집중시켜놓고 보던 강성근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이 주위를 살핀다.

어둠이 대지를 덮은 시간, 하늘마저 어두컴컴하다.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이라면 시야를 일 미터도 확보하지 못할 어둠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파트다. 베란다로 내다보이는 앞 동에는 군데군데 불 켜진 세대가 가끔씩 눈에 들어오며, 장대근의 머리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실타래로 만든다.

강성근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실타래를 풀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어댄다. 그러자 어디선가 숨어있던 다람쥐가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다람쥐의 땀 덕분인지 실타래는 금방 풀린다. 풀리는 실타래만큼 강성근의 머리도 개운해진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다, 영화에서처럼 은밀한 일을 하는 정부의 비밀요원도 아닌 덕에, 누군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이유나 건덕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리모콘의 볼륨을 급격히 낮춘 강성근은 TV정면에 놓여져 있는 소파에 몸을 파묻는다. 편안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그런데 뭔가 찝찝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거실에 열려진 커튼이 눈에 걸린다. 물론 남에게 감시당할 인물은 아니지만 혹시나 남들이 보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의 커튼을 쳤다.

연 분홍빛 바탕에 군데군데 실로 자수가 놓여져 있는 커튼은 강성근의 손에 힘없이 밀렸다. 이제 앞 동에서는 망원렌즈를 설치해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볼 수 없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주스 한잔을 따라온 강성근은 재차 소파에 몸을 파묻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베란다 샤시를 열어 놓았을 때의 차가운 바람과는 달리 몸 전체를 마사지 해 주는 듯한 느낌은 시원함 그대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복도와 맞붙어 있는 작은 방의 창문이 열려있다. 그곳으로 밀려들어온 바람은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열어놓았던 문을 통해 비스듬히 위치하고 있는 거실까지 밀려들어온 것이다. 몸을 일으킬까 하다 강성근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파묻어 버린다.

TV 화면에서는 남자에게 힙을 들어올린 여자가 양팔을 축 늘어뜨려 바닥을 짚은 채 힘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힘겹기보다는 행복한 자세라고 이야기해야 좋을 듯 싶다. 그 여자는 남자의 페니스가 들락거리는 자신의 힙을 쉴새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근은 이런 화면을 좋아한다. 지루하면서도 딱딱하게 똑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테이프들은 이런 장면에서 흥미를 잃게 만든다.

늘 똑같은 모습에 똑 같은 포즈를 취하고 똑 남자를 받아들이는 여자들이지만 그녀들도 배우이기에 앞서 여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남자들처럼 흥분하지 않을까?

그건 강성근이 늘 반문하는 의문이다. 그런데도 화면에서의 여자들은 절대 흥분하는 경우가 없는 모양이다. 남자의 피스톤 운동에 다리를 활짝 열어 젖혀놓은 채 입으로만 가성 썩인 신음소리를 내뱉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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