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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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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봄은 빨리 온다. 2월 중순이지만 햇볕 잘 드는 곳에는 벌써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벌 한 마리가 꽃밭으로 날아든다. 벌은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니며 꿀을 빤다. 그 꽃들은 모두 한 나무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사람으로 치면 여러 자매들과 꿀 같이 달콤한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내게 봄날의 벌처럼 달콤한 관계가 제주도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다. 유채꽃이 피는 3월과 달리 2월의 제주도는 한산했다. 공항에 내려 자동차를 렌트하고 예약을 해 둔 펜션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해안도로를 30여분쯤 달리자 목적지인 펜션에 도착했다. 큰 도로에서 시골길로 1Km쯤 떨어진 곳인데, 펜션 마당에서 바다가 바로 연결된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펜션 주인 내외가 나와 맞이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였다.

“고성기님이세요?”

여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예.”

“3박 예약하셨죠?”

“예.”

“혼자구요?”

“예.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없나 봐요?”

“요즘 비수기고, 평일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요. 혼자인데 심심하려나? 젊은 분들 혼자 여행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하고 친구 맺고, 뭐 그런 거 바라잖아요? 호호호…”

“아니요… 뭐 머리 좀 식히고 쉬려고 온 건데, 조용하면 좋죠.”

이때, 펜션 입구 쪽에서 캐리어 끄는 소리와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데로 잡지, 힘들어 죽겠네.”

“야, 무조건 바다 보이는 펜션 잡자며?”

“버스 다니고 바다 보이는 곳으로 잡으면 되지?”

“그런 데는 콘도나 호텔 밖에 없어. 펜션이 좋다고 했잖아? 너 자꾸 투덜댈래?”

젊은 여자 세 명이 각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펜션으로 오고 있다.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온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렌터카 없이 여행을 하는 건 꽤 번거로운 일이다.

‘차를 렌트 하지 왜 저럴까?’

나는 수다를 떨며 다가오는 세 명의 여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친구들인가?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은 것 같고… 자매들인가?’

펜션 주인 아저씨가 세 명의 여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서진 님 외 2명, 맞죠?”

셋 중에 그나마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자가 나섰다.

“예, 제가 최서진이고요, 얘들 둘이에요.”

주인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다.

“요즘 비수기라 차 렌트 비싸지 않은데…?”

최서진이 담담하게 말을 했다.

“면허 갖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옆에 있던 여자가 투덜대듯 말을 했다.

“나랑, 예진이는 수능 준비하느라 못 땄지만, 언니는 그 동안 뭐 했대? 칫…”

최서진이 윽박지르듯 말했다.

“으이그, 이게 진짜…”

주인 아주머니가 나서며 말했다.

“셋이 자매인가 봐요?”

“예, 동생들이에요, 아니 웬수들이에요.”

“언니!”

동생 둘이 언니인 최서진을 쏘아붙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이분들도 3박 묵을 거예요. 예약된 손님은 두 팀이에요. 혼자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젊은 분들이고, 남자 여자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겠네. 좋을 때잖아요? 호호호… 짝이 안 맞나?”

“예?”

쑥스러움은 남자와 여자 성별 차이로 오는 게 아니다. 혼자와 다수였을 때 혼자인 사람이 느끼는 것이다. 나는 젊은 여자 세 명의 시선을 느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기, 두 팀 묵는 동안 우리가 집을 좀 비워야 해요. 여기 바깥 양반 회갑인데, 우리 애들이 육지에서 회갑연을 치러준다고 해서… 괜찮겠죠?”

“밤에 바비큐 하려면 숯하고 철망 준비해뒀으니까 필요할 때 써요. 원래 돈 받는 건데, 그냥 서비스로 드릴게. 욕실에 수건도 넉넉히 넣어뒀으니까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뭔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요. 옆 펜션 주인한테 와보라고 내가 말해둘 테니까. 여기 다 수십 년 지기 이웃이라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아요.”

펜션 주인 내외는 나와 세 자매에게 숙소와 바비큐 장비들이 있는 곳을 안내하고, 펜션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펜션에는 나와 세 자매만이 머물게 됐다.

내 방에 들어와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단출한 가방을 침대 옆에 던져 놓고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여자 세 명하고 함께 지내는 거 누가 들으면 부러워할 거다. 그런데, 왜 하필 자매들이야? 뭔가 썸띵이 일어나기에는 자매들이라 좀 그렇잖아? 에휴…’

친구 사이의 여자들이라면 골라먹는 재미를 꿈 꿀 수도 있다. 욕심을 더 부리자면 세 명과 동시에 쓰리썸을 꿈 꿀 수도 있다. 하지만, 자매들이다. 자매들이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일은 막장 드라마에서도 없는 일이다. 애초 로맨스를 바라고 온 여행도 아니고, 3박 4일 동안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무슨 일인가 하고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세 자매가 서 있었다.

“예, 무슨 일로…?”

“저… 같이 한 집에서 지내는데 서로 인사도 할겸…”

큰 언니인 최서진이 말문을 열었다.

“언니, 그냥 사실대로 말해. 저, 저희가 저녁 해먹으려고 하는데, 장을 봐야 하거든요. 혹시 그 쪽도 장 볼 거면 저희 태워주실 수 있나요?”

제일 어려 보이는 동생이 똘망똘망 하게 말을 했다.

“예… 사실 뭘 해먹을 계획은 없는데… 혼자서… 그냥 식당에 가서 사먹으려고 했어요.”

막내가 거침없이 말을 했다.

“에이, 펜션 오면 바비큐죠. 바비큐 재료 준비하면서 마트에서 장보고, 그게 펜션 여행의 진수잖아요. 호호…”

어쩔 수 없이, 아니 뜻밖의 행운인 것처럼 세 자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 보기에 앞서 세 자매와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저는 고성기입니다.”

내 이름을 말할 때, 막내는 얼굴을 돌리고 킥킥 웃어댔다. 어리다고 얕잡아봐서는 안 되겠다. 내 이름이 ‘성기’라고 웃는 것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뭘 안다고… 으휴…’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큰 언니 최서진은 24살이다. 1년 휴학을 하고 이번에 대학을 졸업했다. 체격이 아담하고, 똑똑해 보이는 얼굴이다. 남자들이 흔히 머릿속에서 ‘커리우먼’하면 떠올릴 것 같은 모습이다.

둘째의 이름은 최현진이다. 21살이고 대학 반수를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얼굴은 언니랑 비슷하게 예쁘장한 얼굴인데, 돗수가 그리 높지 않은 안경을 쓰고, 다소 내성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언니와 사뭇 다르게 몸매가 꽤 글래머 하다. ‘청순글래머’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모습이다.

셋째의 이름은 최예진이다. 20살이고,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 언니들은 대학 전공이 문과인 것과 달리 이과 출신이다. 그것도 의대다. 제일 막내지만, 언니들보다 키는 제일 크다. 의대생답지 않게 모델처럼 잘 빠진 몸매를 갖고 있다. 얼굴은 완전히 애기처럼 귀엽고 예쁘다.

세 자매의 이름은 ‘진’자가 돌림인 것 같다. 서진, 현진, 예진. 얼굴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예쁜 얼굴로 비슷하다. 그런데, 체형은 사뭇 다르다. 제일 언니인 서진은 아담한 스타일, 둘째인 현진은 글래머 스타일, 막내 예진은 모델 스타일이다.

“저는 26살이고요, 3월에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우리보다 오빠네요.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성기 오빠. 호호호…”

세 자매와 함께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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