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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할까요?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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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

“어휴. 그 싸가지!! 야옹아 엄마 오늘도 너무 힘들었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민영은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우며 강아지를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든 포메라니안. 그녀의 이름은 야옹이다. 들고양이만큼이나 도도한 외모를 가진 탓에 야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를 가져 더 키우기가 어렵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1년 전 데리고 오게 된 야옹이.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야옹이를 슬프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민영은 더욱 정성을 쏟았고, 민영 역시 야옹이 덕에 많은 위로를 얻었다.

민영을 위로해주듯 야옹이는 얼굴 이곳저곳을 마구 핥아댔다. 자취생활 3년째. 대학을 졸업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민영은 우선은 급한 대로 알바자리 먼저 알아보았고, 그곳이 바로 한신 백화점이었다.

민영은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민영이 일을 시작한 지는 정확히 6개월이 되던 그 날, 지금으로부터는 한 달 전. 악마라 불리는 그가 찾아왔다. 잠시 해외에 연수차 나가 있던 그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직원들은 공포에 떨었고, 물론 그를 본 적이 없었던 민영으로서는 직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샤프하지만 남자다운 굵직한 얼굴형에 송충이 같은 짙은 속눈썹. 쌍꺼풀 없는 큰 눈에 우뚝 솟은 코는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옆으로 쓸어 넘긴 포마드 파마는 그 조각 같은 외모와 예술적으로 어울렸다.

그런데 저런 남자가 ‘악마’라니 민영은 직원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불과 얼마 후 일어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한쪽 손을 주머니에 꽂고 걷는 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건방져 보이지는 않았다. 직원들 모두 양옆으로 죽 늘어서 남자가 가는 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인 채였다. 적응이 안 되었지만, 민영 역시 그들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자는 민영의 앞에 멈추었다. 민영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가 싶어 두려웠지만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직원들의 말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서서히 민영의 근처로 다가왔다.

‘뚜걱 뚜걱’

주머니에서 나온 남자의 굵직한 손이 잡은 어깨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민영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얼핏 비친 남자의 손. 일반적인 상처라 보기엔 무리가 있는 깊은 상흔이 그의 손 등을 엑스자 모양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건가.

남자는 민영의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아주머니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아무 표정 없이 아주머니를 노려보았다. 아주머니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고, 남자는 그것을 즐기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지혁

“너무 겁먹지 마세요. 제가 뭐 사람 잡아먹기라도 한답니까. 그런데 우리 매장에 이 구질구질한 옷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처음 들었던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으나, 날카로운 칼 같았다. 남자의 한 마디에 아주머니는 그를 따라 걸어오던 두 명의 남자에 의해 매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손님1

“저 썩을 놈이 저거! 너도 늙어 봐. 너는 어미 아비도 없냐? 에이 벼락을 맞을 놈. 에 퉤.”

아주머니는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될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며 남자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짙은 눈썹의 남자는 왼쪽 위 주머니의 행거칩을 꺼내어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았던 손을 닦아내었다.

민영은 엄마 같은 아주머니에게 함부로 대하는 남자의 행동에 화가 나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버렸고,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남자는 짙은 초록빛이 감도는 눈으로 민영을 내려 보고 있었다.

지혁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

그 눈빛. 악마는 거기에 있었다. 안 그래도 조용했던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더욱 조용해졌고, 민영은 겁먹은 토끼 모양을 한 동그란 눈을 다시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지혁

“아니, 그게 아니지.”

남자는 민영의 턱을 세게 쥐어 잡아 올렸다. 그 까마득한 짙은 흑갈색의 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민영의 눈빛이 또다시 마주쳤다.

지혁

“꿇어.”

민영

“……?”

처음엔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민영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를 끌고 갔던 두 남자가 민영의 어깨 위를 내리눌렀고, 남자들의 힘으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가 했던 말이 그녀가 알고 있는 ‘꿇다’는 의미의 그것이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비참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민영의 곁을 스쳐 갔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섞여 있지 않았던 눈. 그는 정말 악마란 말인가.

소정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그래도 넌 정말 운 좋았다. 예전에는 어휴. 얼마나 어마 무시했는데, 해외 갔다 오더니 성격이 죽은 건지……. 그나마 거기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 소정은 그런 말로 민영을 위로했다.

소정

“그래도 어쩌겠어. 여기만큼 월급 주는 데도 없고…….”

한탄하듯 말하던 소정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민영은 더욱 세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민영은 소장의 말에 다른 토를 달 수 없었다.

민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옹이의 밥그릇에 사료를 쏟아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민영

“에휴.”

하지만 입맛이 없는지 야옹이는 사료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책상 위의 창문 밖을 응시했다.

민영은 부쩍 외로움을 타는 것 같은 야옹이가 안쓰러워 남자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동물이라는 생명 자체의 본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야옹이에게는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외로워하는 것도 같았다.

민영은 침대 옆 책상에 놓인 핑크색 노트북을 펼쳐 ‘내 이웃’ 검색 창에 ‘강아지 남자친구’를 찾아보았다.

카페 연관 검색어에 ‘강소(강아지를 소개합니다.)’가 올라와 클릭해 보니 역시나 많은 강아지 주인들이 강아지의 짝을 찾고 있었다.

그중 민영의 눈을 끄는 강아지가 있었으니 바로, 야옹이와 같이 이제 2년 된 포메라니안 수컷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 강아지 애인 찾아요. 이름은 아지. 성은 강. 강아지. 2년 된 수컷입니다. 쪽지 주세요.’

PS. 상대 강아지는 중성화하지 않은 여자 포메 일 것.

짧고 간단한 글이었다. 민영은 스크롤을 내려 강아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초롱초롱 맑은 눈에 단정한 자세. 딱 봐도 사랑받으며 자란 강아지 같았다. 저런 강아지라면 우리 야옹이를 맡겨도 되겠는데?

민영

“야옹아~ 우리 야옹이 잘 생긴 서방 하나 만들어 줄까?”

민영은 야옹이를 들어 올려 그 촉촉한 코에 입을 맞추었다. 야옹이는 마치 민영의 말을 알아들은 듯 허공에서 꼬리를 흔들어 댔다. 민영은 야옹이를 무릎에 내려놓고 ‘강아지’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 주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아지가 예쁘네요. 애인 원합니다. 2년 된 포메구요. 여자예요.^^ 중성화 안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에게서 쪽지가 왔다.

‘면접 시간 잡고 만나서 미팅하도록 해요. 시간은 토요일 오후 3시 강남 3호선 앞 애견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면접을 본다는 게 조금은 이상했지만, 저 정도의 강아지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알겠다고 메시지를 남긴 뒤 자리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야옹이도 민영의 옆에 웅크리고 꼬리를 말고 누워 둘은 함께 같은 공간의 숨을 나누어 마셨다. 그렇게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가 저물었다.

***

다음 날 한신 백화점 사장 지혁의 사무실.

지혁

“무슨 일을 이렇게 개떡같이 처리해!”

잔뜩 화가 난 지혁이 네 명의 사내 앞에서 서류 봉투를 그들의 앞으로 내던졌다.

지혁

“나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다닌 거야 어?”

잔뜩 화가 난 지혁은 머리가 아픈 듯 머리를 잡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지혁

“인사관리 똑바로 안 하면 너희 모가지 먼저 날아간다. 알겠어?!!!”

직원1

“예.”

지혁

“나가 봐.”

남자들은 깍듯이 인사를 한 뒤 지혁의 사무실을 뒤로 한 채 방을 나갔다.

지혁

“후. 골치 아픈 것들.”

팔목에 찬 시계를 본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화점을 향해 갔다. 지혁은 문을 열어주겠다는 기사를 제지한 뒤 거칠게 차 문을 열어젖히고 뒷좌석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앉았다.

‘지잉- 지잉- 지잉-’

요란하게 울려대는 문자.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회사의 중요한 계약 건도 있을 것이고, 쓸데없는 광고 문자도 있을 것이다. 지혁은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옆 좌석으로 던져 버렸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조금 쉬고 싶었다. 그곳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이다. 기사에게는 아무 소음도 내지 말라 일러뒀기에 자동차의 배기음 외에 그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없었다.

***

백화점에 도착해 기사는 지혁이 앉은 뒷문을 열어 주며 고개를 숙였고,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글라스를 끼고 당당한 걸음으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본래 이렇게 발걸음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온 것이어서 그런지 직원 관리가 영 꽝이었다.

인사, 자세, 옷차림 등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눈에 걸리는 신입. 이름을 알 수 없는 계집애는 당돌하게도 그 날 내 눈을 똑바로 마주쳤었지. 화장품 코너라고 했나.

민영

“후. 손님. 이건 물건이 아닙니다. 손 치워주세요.”

손님3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민영

“아니 지금 여기에 손대셨잖아요!!!”

그 당돌했던 여자가 지금 다른 손님과도 경합을 벌이는 중이었다. 지혁은 조용히 그 둘에게로 다가갔다.

지혁

“저.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남자는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손님3

“아니 여기 사장 나오라 해 사장. 이 미친 x이 뭐?”

지혁

“제가 사장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셨습니까?”

손님3

“어~ 그래 너 잘 만났다. 직원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시키는 거야? 얼굴만 반반한 년이 내가 왜 내 멀쩡한 마누라 놔두고 제 뭐? 엉덩이를 만져?”

민영은 그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지혁은 민영의 표정에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민영에게로 다가가 그 가냘픈 목을 부여잡고 억지로 90도 인사를 하게 시킨 후 자신도 그 옆에서 똑같이 90도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혁

“죄송합니다.”

이유도 묻지 않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지혁

“따라하지 신입?”

지혁은 옆에 선 민영 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고,

민영

“읔!”

그 강한 아귀힘에 민영은 어쩔 수 없이

민영

“죄, 죄송합니다.”

무엇이 죄송한지도 모른 채 그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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