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게 좋아
1화
웹소설 작가 -
본문
개떡같은 아침이다.아침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송 팀장에게 불려가 ‘너 앞으로….’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거짓말 보태지 않고 30분이나 들었다.
그것도 군(軍)생활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숫자밖에해 보지 못한 ‘차렷’이라는 부동자세로 말이다, 제기럴….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취사병 할 때는 정말 밥그릇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놈의 시궁창 같은 사제(사회)에서는 단 한끼라도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 원…. 정말 산다는 게 뭔지 허망할 뿐이다.솔직히 아침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송 팀장에게 불려갔을 때도 그렇다.
그놈의 밥그릇만 걸려 있지 않다면 싸가지없이 조잘대는 송 팀장의 아구(입)를 한 주먹으로 갈기고 ‘그래 너 잘났어! 너 혼자 다해라, 다해!’ 이렇게 외치고 나왔을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질대로 했다가는….하긴… 그러고 보면 나도 그렇게 잘 한 것은 없다.세상에 어느 회사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하는 사원을고운 눈으로 봐 주겠는가. 더군다나 회사의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 특별 프로젝터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는 팀장 앞에서 ‘아…’ 라고 야릇한 신음소리에 ‘문신…’이 어떻고 하면서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으니 말이다.그렇다고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좀더 엄격히 따진다면 내가 그렇게 헛소리를 한 것은 오로지 송 팀장 때문이다.
어제 송 팀장이 그렇게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출근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찢어진 청바지에 헐렁한 박스 티가 그녀의 옷 전부인줄 알았던 나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에게 송 팀장에게도 감색 투피스 정장과 미스 코리아 뺨칠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 화장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덕분에 나는 평소 품고 있던 작전을 펼쳐 보겠다고 마음을먹었고, 그 마음은 아침 출근길에 눈병이 걸렸다는 핑계를 대며 당당하게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하게 된 것이다.물론 내가 끼고 있는 선글라스는 보통 선글라스가 아니다.뭐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아주 특별하고 희한한 선글라스라는 것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넘어가겠다.
여하간에 아침에 ‘쇼’가 일어난 것은 내 잘못 보단 송 팀장의 잘못이 더 크다는 말이다.아침부터 잔소리를 배터지게 듣고 나니 정신이 내 정신이아니었다.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송 팀장 방을 나서자마자 저쪽 끝에 앉아있는 서진주씨가 ‘풋풋…’거리는 웃음소리를 보이며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것도 고소하다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이다.
제기럴….남은 아침부터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데 나를 놀리고 있다니….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참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결론은 간단히 나왔다.그러치 않아도 선글라스를 통해 본 송 팀장의 요란한 스트립 댄스 때문에 한껏 발기했다가 꺼져버린 물건의 아쉬움에다가 서진주씨의 저 깜찍한 웃음소리에 스며있는 음탕한 몸짓을 더한다면 아주 간단한 결론이 나는 것이었다.
“서진주씨….”
내가 다가가자 서진주씨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던 웃음소리는 사그라졌다.
그렇다고 B알 달린 남자 새끼가 한번꺼내든 칼을 그냥 다시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다못해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왜요?”
나를 올려보는 눈빛이 뭔가를 짐작했는지 살짝 빛났다가사라진다.
하긴, 내가 자기를 부르는 이유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업무의 독립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담당하는 업무와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엄격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되도록 무심히 말했다.
솔직히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나답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한 사무실을 사용한다는 이유와 더불어 그녀와 나의 음탕한 관계가 남들에게 드러나지않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제기럴…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내가 자기를 부르는것은 ‘척’ 하면 ‘착’이고 ‘아’ 하면 ‘으응’일 정도로 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침부터 송 팀장에게 잔뜩 열 받은 상태라면나 보다 자기가 더 잘 아는 일이었다.
“잠깐만 면담 좀 하자니까요.”
“왜요? 무슨 일로 요…?”
뻔한걸 뭐 때문에 자꾸 묻는단 말인가? 내가 요즘 소홀히대했다고 삐진 건가? 그럴 리가 있나? 하룻밤에도 두, 서너명은 간단히 해결하는 능력 있는 여자가 말이다.
“커피 한잔합시다.
뭐 때문인지는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할테니…!”
“…?”
제기럴… 여시 같은 기집애! 뻔히 아는 것을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술을 뾰족이 내민다.
여하간 여자들의 내숭은정말 못 말리겠다.
“저기 커피 자판기 앞에 있겠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 알았어요!”
송 팀장 목소리처럼 날카롭게 쏘아대는 느낌이 찜찜하게따라 붙는다.
그렇다고 내가 죽은 듯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아니 숙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아침은더더욱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합의하지 않았는가.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한번 더 다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서진주씨의 쌀쌀한눈빛이 등뒤에서 날카롭게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고 싶은 생각을 들지 않았다.
아니 무시했다는 말이 좀더 정확하다.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직원 휴게실에 있는 커피 자판기앞으로 걷다가 주변을 살피고는 얼른 비상구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커피 자판기라는 말은 은어다.
아니 비밀 암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단순히 직원 휴게실에 있는 커피 자판기라는 용어 그대로지만 서진주씨나 나에게는‘한번 하자’란 은어로 통한다.
마음이 있던 없던 비상구 계단으로 나오라는 소리인 것이다.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일회용 라이터돌에서 번쩍이는 불빛이 빨갛게 일어났다가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헛파람 소리가 밀려오는 것처럼 냉랭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등을 안 바꿨나?”
우리 회사가 있는 빌딩 비상구는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않아 인적을 쉽게 찾을 수 없다.
하긴 25층 빌딩에서 비상구계단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 같아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때문에 비상구 계단은 늘 음침하다.음침한 이유야 당연히 조명이 밝지 않아 음침한 것이다.
아무리 햇빛이 쨍쨍 내려 쬐는 한낮이라 하더라도 이 놈의 비상구는 늘 음침하다는 말이다.
당연한 일이다.
비상구라는 것이 보통 건물 외벽으로 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이 빌딩은 건물 정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거기에다 조명도 한 몫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명이랄것도 없지만, 그래도 있다는 것이 어림잡아 30W도 되지 않을백열등이 한 층에 하나씩 그것도 갓이 씌워져 있는 것이다.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방의 형광등이 보통 30W에서40W정도이고 그것도 백열등 보다 두 배는 더 밝다는 것을감안한다면 30W 백열등 하나가 비상구 계단의 한 층을 커버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인지는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여하간에 그런 이유 때문에 더 음침한지는 모르겠다.
아니사실 그것 때문에 음침하다.
더군다나 어떤 층은 그나마 있는백열등까지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서 있는 층이 바로 그런 층이다.담배 연기를 빨아 당기고 뱉어내고 하면서 서진주씨를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송 팀장의 벌거벗은 나신이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탐스럽기 그지없는 나신이었다.평소 박스 티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몰랐는데, 송 팀장의유방은 생각지도 않았던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리 큰 유방을이때까지 한번도 감지하지 못했는지 나로서는 정말 황당한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랫배에 그려져 있는 문신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러고 보면 나도 참 멍청한 놈이다.그렇게 조심하라고 스스로 지적하고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어떻게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 이전글아내의 어린 수컷들 20.01.30
- 다음글특별한장소 20.01.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