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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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친구

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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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장점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성격이 꽤 활달하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일반적인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반대로 누구에게나 아무런 거리낌이나 거부감 없이 말을 잘 건넨다. 덕분에 아내는 첫 안면을 터는 사람들에게 친숙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리더로 추대받는 경향이 있다.

아내의 장점이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호기심도 강하다. 이건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장점에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일반적인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폐쇄성이나 자기 보호 본능으로 인한 정체성과 비교한다면 그건 당연히 장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내의 이런 장점들은 비교적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와 비교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 한 가지 예가 이런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리저리 찾아보고 파헤치며 혼자서 끙끙거리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누구에게라도 물어 즉답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다. 그 성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져보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덜렁거리며 실수가 많은 편이다.

아내와 같이 백화점 쇼핑이라도 가는 날에는 우리 부부는 거의 99% 얼굴을 붉히며 집으로 돌아온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쫀쫀해…?"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내의 입에서는 항상 같은 말이 튀어나와 나를 곤욕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얼굴 붉히고 큰소리치고 하는 것은 옛날 일이다. 즉, 신혼 초기의 일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나를 비방하며 말꼬리를 붙잡는 순간 나는 일찌감치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 순간 아내와 말싸움을 해봤자 나에게 이득 될 게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무대포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은 그 짧은 시간 엄청날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나에게 달려들기에 한 발 빼지 않고는 큰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아내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다. 당장 필요한 물건도 아닌 것을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산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엉터리 물건에 바가지 쓴 울분을 풀지 못해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 끝내 나에게 한바탕 쏟아 붓고 나서는 스스로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식이다. 물론 다음부터는 내 말을 꼭 듣겠다는 말을 한 번도 빼놓지는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때뿐이다.

사소한 것들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것들로 따져볼 때 아내와 나는 물과 기름의 존재처럼 웬만해서 융합되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히, 아내와 내가 백발의 성성해질 때까지 융합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치명적인 말을 한 적은 없다. 아무리 화가 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열을 받아도 "그만 살자" 니 "헤어지자" 네 하는 소리는 아내나 나나 단 한 번도 한 적은 없다. 그것 때문에 물과 기름 같은 우리 부부가 큰 문제 없이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내는 바쁘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라는 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하루빨리 생활터전을 잡아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겠다면 직장 전선으로 뛰어든 지 벌써 5년째다.

활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대부분이 그렇듯 아내도 꽤 덤벙댄다. 뒤끝이 없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것들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어렵게 처리해 자그마한 마찰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내는 직장에서도 웬만큼 대접을 받고 있다. 조금 덤벙대는 그 성격만 아니었다면 아내는 벌써 직장에서 과장대접은 받았겠지만, 아직은 그 훤한 대리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하나 있다. 총명하고 귀여운, 흔히들 하는 이야기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딸이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우리는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 부부와 같이 생활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노부부의 적적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우리 부부의 빠른 터전을 잡기 위한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부모님들도 잘 알고 계신다. 다만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만….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본가를 찾는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는 그 일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거리를 빨빨대며 쏘다녀도 밤만 되면 자기 집을 찾아 들어가는 그 수많은 사람처럼 우리 부부도 일요일만 되면 거의 의무나 습관처럼 본가를 찾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지고 있는 죄스러움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나쁘게는 생각 않는다. 덕분에 부모님과 아내의 친숙감도 훨씬 좋다.

여하튼 우리 가족은 주말 가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직장에서 제법 인정을 받고 있기에 우리 가족이 모여 살날도 이제 2년 정도만 더 고생하면 끝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동생도 볼 생각이다.

아내는 활발한 성격만큼이나 친구가 많다. 어떨 때는 그 친구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을 난잡한 여자들로 대하지 않는다. 아내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숙희라는 친구는 아내에게 있어 친자매 이상의 단짝 친구다. 어떨 때 보면 피를 나눈 형제지간보다 더 친근해 보이고, 또 어떨 때 보면 다정한 부부처럼 간지럽기도 하다.

보는 내가 그녀들의 짓거리를 징그러워할 정도니 그 둘의 느끼함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가끔 아내와 그 숙희라는 친구 사이를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활달한 성격에 불만이나 특별히 미운 감정은 없기에 그 숙희라는 친구에게서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한날 아내는 단짝인 숙희 씨의 신상 변화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때아닌 아내의 호들갑에 나는 웬 난리야 하며 은근히 짜증까지 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도 그 짜증을 쉽게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큰일이기는 했지만, 요즈음의 세태나 생활양식 등을 떠올려본다면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에 짜증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아내가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한 이야기는 숙희 씨의 별거에 관한 것이었다. 숙희 씨가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원인이 성격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몇 번이나 강요하다시피 성격 차이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나는 그 원인을 성격 차이라고 하는 것보다 성(性)적 차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굳이 드러내 놓고 말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다. 아내가 친구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 알고 있거니와 자신의 단짝 친구에 대해 혹평하는 나에게 - 나중이야 어떻든 -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고, 아내 역시 그 이상 숙희라는 친구의 별거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우리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세세한 일까지 숙희라는 친구에게는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때문에 숙희라는 친구의 별거가 진행됐다고 생각할 정도로.

"괜찮아…, 설마 당신이 숙희랑 무슨 일을 벌일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당신 사랑해….??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추궁을 이렇게 받아넘겼다.

물론 나도 아내를 사랑한다. 따지고 보면 아내랑 같이 생활한 지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이나 아내와 나 사이에 있는 기묘한 감정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랑인지 정인지도 불분명해졌지만, 나는 아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끼고 존경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장래에 대한 꿈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는 과정 중의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중, 그 애매하고 복잡하며 말로 표현하기조차 거북한 일이 발생한 시초가 된 것은 지방 출장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고도 없이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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