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될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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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즈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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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될 놈

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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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깃들어 있는 최초의 영상은 깊고 은밀한 틈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홀로 누워 있었다. 삐걱거리며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 스르륵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장롱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최초의 그것은 그렇게 소리로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

허공 속에 떠 있던 그것. 어두운 장막으로 드리워져 있던 그것. 그리고 부끄러움도 없이 제 모습을 드러낸 그것. 그녀의 깊고 은밀한 틈새…

그때 그녀는 여중생이었을 것이다.

수업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내가 두 눈을 흡뜨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속옷 색깔이라든지 무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어디론가 감추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속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내 허리춤을 들추어 슬쩍 손을 대본 다음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랬다.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기에 나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막 두 돌을 지나고 있었고, 그녀는 나의 막내 이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 최초의 영상은, 그렇게 원판 사진 속의 그것처럼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것이 시작이다.

나는 T시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 어머니는 꼬박 24시간을 진통하다 결국 의사의 권유에 따라 제왕절개를 택했다고 한다. 잘못하면 둘 다 위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 삶의 시작은 그렇게 처음부터 꼬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그랬다고 들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초등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아버지란 단어를 모르고 살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외조부가 운영하는 한 조그만 여인숙의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양장점을 내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식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집안에 남은 식구는 외조부모와 어머니, 나, 막내 이모, 그리고 외삼촌밖엔 남지 않았다.

하긴 그것도 많은 식구다. 하지만 그 전엔 더 많았다. 칠 년 사이에 네 명의 이모들이 시집을 갔다. 덕택에 집안은 완전히 거덜났다.

<낙원 여인숙>

이게 우리집의 이름이다. 내가 "낙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 의미가 지저분하고, 음습하며, 매음굴과 같은 난삽함을 뜻하는 것일 줄로만 알고 있었다. 후에 낙원의 뜻을 알고나서 나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집이 낙원이었다면 이 세상은 온전히 천국이었을 것이다.

나는 전형적인 천덕꾸러기로 키워졌다. 어머니는 늘 바빴고, 다른 식구들은 내게 무관심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빠듯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나의 유일한 위안처는 막내 이모였다. 어린 시절, 나는 젖도 나오지 않는 막내 이모의 젖꼭지에 매달리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내가 훗날 그녀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 최초의 여인은 바로 그녀였으므로.

우리집 근처가 유곽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까마득히 먼 후의 일이다. 물론 요즘과 같은 형태의 그런 창녀촌은 아니었다. 콧구멍 만한 선술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가운데, 그곳의 작부들이 기생과 창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싸구려 방석집 정도라고나 할까? 그 끝에 우리집이 있었다.

그래,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굳게 잠겨 있는 깊고 푸른 문의 자물쇠를 열어줄 최초의 존재는 바로 그들이다!

명자는 <성주옥>의 제일 고참 작부다.

자세한 나이는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성주옥>에서 일했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20대 중반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서른이 넘은 것 같다. 늘 짙은 화장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아침녘에 잔뜩 부은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아줌마다.

명자는 근동의 술집에서 제일 소문난 악바리다. <성주옥>에선 사흘에 한 번 꼴로 싸움이 난다. 대부분 명자가 일으키는 분란이다.

명자는 싸움꾼이다. 시시한 남자들은 명자한테 맥도 못 춘다. 남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보면 저절로 기가 질린다.

그래도 나는 명자를 좋아한다. 이곳의 술집 작부들 중에서 나를 제일 귀여워해주는 여자가 바로 명자이기 때문이다. 나만 보면 불러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이따금 용돈도 쥐어준다. 물론 심부름이 전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관없다.

게다가 명자는 내가 자기 젖가슴을 조물거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손모양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주무르는 방식을 가르쳐준다. 그럴 때 명자의 표정은 들큰히 녹아내린다. 엄마는 가슴 근처에 손만 가도 버럭 화부터 낸다. 막내 이모 역시 내가 나이가 들고나니 은근히 나를 꺼리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제 내겐 명자가 제일 만만한 여자다.

나는 명자를 이모라고 부른다. 사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모조리 내게 이모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명자하고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명자가 술집 여자라서 그런가 보다.

<성주옥>에 손님이 많은 날이면 명자는 어김없이 우리집을 찾는다. 당연히 남자와 함께다. 보통은 인근의 막노동꾼들이거나 뜨내기 술꾼들이지만 이따금 자기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날은 하룻저녁에 남자를 세 번이나 갈아가며 찾는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명자는 늘 술이 떡이 돼 있다.

항상 화장실 옆으로 난 회랑 끝에 있는 9호실 골방을 찾는 명자를 보며 나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늘 궁금했다. 한 번은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가 그곳에서 들려오는 명자의 신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씩씩대는 남자의 숨소리와 뒤섞여 들리는 명자의 신음소리는 흡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애절했다. 저 남자가 혹시 명자를 죽이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글거리고 있는 명자를 볼 수 있었다. 죽다 살아난 여자치곤 너무 생생해 보였다.

9호실 벽엔 전화번호부 책정도 크기의 창문이 뚫려 있었다. 화장실 위 지붕에서 보면 방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긴 내가 찾아낸 비밀 장소다. 대개는 창문이 닫혀 있지만 이따금 열려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곳을 통해 명자의 모습을 훔쳐볼 기회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지붕 위에 숨어 있다가 어른들이 모두 방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나는 조심스레 목을 기웃거렸다. 윗통을 벗은 사내의 등짝이 보였다. 그 밑으로 명자의 것으로 보이는 다리가 사내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좀더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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