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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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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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누나

<01>

사건은 꼭 예상치 못한 데서 터지기 마련이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날 내가 하필 그곳으로 배달을 가지 않았더라면……그랬더라면, 은아 누나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일 같은 거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배달이요~”

여느 날과 똑같이 철가방에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 小짜리를 담아 찾은 집은 무척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라이, ㅆㅂ…….”

하여튼 배달 일을 하다 보면 별꼴을 다 본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좀 작작 싸우고 음식부터 받아야 하지 않나?

나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배달이요!”

- 이 ㅆㅂ 갈보 년아! 너 같은 년은 뒈져야 돼. 이 창녀 같은 년!

- 그래, 이 미친 새끼야! 죽여 봐, 어디 죽여 보라고! 꺅!

부부의 언행은 격렬했고, 안에서는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이어…….

퍽! 짝! 푹!

“…아….”

기어이, 손찌검까지 시작되는 듯했다. 나는 최소한 저건 말려야겠다 싶어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저기요! 짜장면 배달 왔다고요! 이봐요!”

- 아이, ㅆㅂ! 누구야!

남자는 거친 욕을 내뱉으며 벌컥, 문을 열었다. 알몸에 트렁크 팬티 하나만 입고 있는 남자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숨을 씨익, 씨익, 내쉬고 있었다.

“배달 왔는데요.”

나는 그 남자 앞에 철가방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사는 게 더럽고 치사해도 뭐, 이럴 때 웃는 자가 1류라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역시나. 이 벌거벗은 원숭이는 웃는 낯짝에 잘도 침을 뱉었다.

“별 거지 같은 새끼가……. 밥맛 떨어졌으니까 꺼져!”

“에헤이, 이미 주문하셨는데 그냥 꺼질 수는 없죠. 만 오천원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뭐? 야 이 새끼야, 너 내 말이 우스워? 그냥 꺼지라는 말 안 들려?!”

“잘 들리는데요, 제가 못 꺼지겠다고요. 돈을 주셔야 가죠.”

“근데 이 새끼가……!”

“여기요! 이 돈 가지고 빨리 가세요!”

겁 없는 이 남자는 내게도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그의 아내가 나타나 내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이 ㅆㅂ년 봐라? 너 지금 이 짱깨 새끼한테도 꼬리 치냐?”

아. 남자는 중증인 듯했다. 배달원한테 돈을 준다는 이유로 꼬리 치냐니. 난 참 어이가 없…….

“……은아 누나?”

나는 내게 돈을 건네는 가녀린 손목의 주인을 알아보고야 말았다. 뜻밖의 사람에게 제 이름을 불린 그녀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너……병태?”

엉망진창인 얼굴을 한 누나 또한 용케 나를 알아보았다.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자, 가운데 껴 있던 원숭이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이 쌍것들 봐라? 너희 뭐야? 야, 이 걸레 년아. 너 이 새끼 때문에 짜장면 먹자고 나 꼬셨구나? 오냐, 잘 만났다. 오늘 너희 다 내가 죽여줄게. 이판사판이다.”

“아악! 이거 놔! 이거 안 놔?!”

남자의 손이 누나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의 주먹이 또 한 번 그녀에게 나가려는 걸 본 순간, 나 또한 눈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너 그만 못 둬, 이 ㄱ새끼야?!”

나는 쓰고 있던 헬멧을 집어 던지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비로소 진정한 개싸움의 시작이었다. 짜장면과 단무지가 허공을 가르고, 짬뽕과 탕수육 소스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소란은, 동네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 덕분에 일단락되었다.

*

나는 하나였고, 저쪽은 둘이었다. 그리고 그 둘 중에 하나가 하필이면 은아 누나라서, 나는 더 외롭고 쓸쓸했다.

“안병태 이 새끼 어디 갔어! 너 이 놈의 자식!”

그리고 경찰서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우리 아버지의 등장에- 나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쪽팔림까지 추가했다.

“요즘 어째 조용히 산다고 했다, 이 꼴통 새끼. 뭐? 배달을 해? 그러다 손님을 패?! 네가 그러고도 내 새끼냐! 어?!”

“아, 아파요!”

“여보, 제발……!”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아버지께 등짝을 후드려 맞았다. 엄마는 옆에서 동동거리며 아빠를 말리느라 야단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누나는, 은아 누나는 어디로 갔지?

“오은아 씨는 이미 귀가하셨는데요.”

“네? 그 쓰레기 같은 새끼랑요?!”

내가 그녀의 남편을 쓰레기라고 지목하자 경찰은 잠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남편 분하고 같이 귀가하셨어요.”

“아……네.”

그 거지 발싸개 같은 자식이, 누나 남편이었구나. 애인도, 동거남도 아닌 법적 보호자가 그런 새끼였구나.

무려 6년 만의 재회였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나를 한 번 더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간단 말인가. 하긴, 누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쿨 했고 내게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지.

합의를 마친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내 일터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다. 아, ㄴ미럴. 내가 누나 집인 줄 알고 갔냐고. 그 집으로 배달만 안 갔어도 이 사달이 나진 않았을 텐데.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었다.

가뜩이나 취업도 안 되는데, 어디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나.

“여어~ 오 변기님~”

어쨌든 이런 날엔 더 생각 말고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절친 오경수 변호사님을 불러낸 것이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경수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아직 누나한테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건가.

“……나 오늘 중화반점에서 잘렸다.”

“얼씨구. 웬일로 오래간다 했더니. 으이구.”

경수는 한숨을 내쉬며 소주잔에 술을 따라 원샷을 했다. 흠, 내가 원한 반응은 이런 게 아닌데.

나는 고기를 구우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늘 누나랑 전화 같은 거 안 했냐?”

“누구? 우리 누나?”

경수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아무래도 그녀는 변호사인 동생에게 오늘 있었던 추잡한 얘기 따윈 하지 않은 듯했다.

“……아니야. 은아 누나는 요즘 어때? 잘 살아?”

“새끼. 우리 누나 결혼한 뒤로 한 번을 안 묻더니, 오늘은 웬일이냐?”

“아니, 뭐, 그냥…….”

누나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버린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동안 의도적으로 은아 누나에 대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한 결혼 생활의 실체를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요즘 워낙 바빠서. 엄마랑 통화도 일주일에 한 번 겨우 하는데 누나랑 할 시간이 어디 있냐.”

“……그렇군.”

“아, 됐고! 너 또 알바 잘린 기념으로 형이 쏜다. 많이 먹어라, 인석아.”

“아쭈, 까불기는.”

“그럼 네가 낼래?”

“형님! 제 잔을 받으시와요~”

누나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러다 내가 먼저 잘못 입을 털까봐 나는 그쯤에서 멈췄다. 그리고 늘 그랬듯 녀석과 술을 진탕 마시고는 경수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야, 한 잔 더 하기로 해놓고 먼저 자기 있냐?!”

“에이, ㅆㅂ. 너는 백수지만 나는 내일 회사 가야 한다고~!”

“와, 치사한 새끼. 자라, 자! 영원히 디비 자라!”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의리가 없는 경수 놈은 자기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널브러졌고, 나는 홀로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홀짝였다.

“아……여기 야경이 또 쥑이지.”

퍽 성공한 변호사인 경수네 집 베란다에서 야경을 보며 분위기를 잡기 위해 거실 창을 열었다.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담배 냄새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쉿.”

그곳엔 놀랍게도,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은아 누나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한 아슬아슬한 슬립을 걸친 채 야릇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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