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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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웹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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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호선 만원전철의 치한

‘호오라. 저 쉬끼 봐라.’

한 여자애 뒤로 다가가는 양복 입은 사내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애는 비행승무원들이 하듯 머리를 빤빤히 뒤로 빗은 형태였다.

가냘픈 목선이 뚜렷한 그녀 뒤로 바싹 붙기 시작하는 놈. 내 코가 석잔데 그 놈이 그 년 뒤로 가던 난 상관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왜지? 놈이 부러워서였을까. 놈이 분명 손으로 여자애 어딘가를 쓰다듬을 텐데.

놈의 팔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듯 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양복 주머니에 넣었던 손이 밖으로 나와 아래로 향했다. 여자애 허리춤에서 전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애는 눈치를 채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여자애 등 뒤로 바짝 다가가 서있는 놈의 팔은 점점 더 힘을 싣고 있었다.

난 각도를 비틀었다. 좀 더 쉽게 광경을 포착하기 위해서 말이다. 허리춤 쪽에서 놀던 놈의 손이 아니나 다를까 역시 계집의 둔부를 향해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간만에 목격하는 일이라 나마저도 침이 꼴깍 넘어가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놈은 계집의 타이트해 보이는 스커트 바깥을 둥글게 원형을 그리며 몸을 아주 가까이 대고 있었다. 아마도 놈의 딱딱해진 사내자식이 계집의 둔부 갈라진 쪽을 비벼대고 있음은 이제 자명한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난 놈의 엉덩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의 속도를 늦춰가며 리듬을 타는 놈의 움직임을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난 육감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강남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2호선 지옥철. 워낙 씨알머리들이 많아 서서 잠자도 안 넘어질 비좁은 공간. 놈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쾌락을 풀고 있었다.

“어머 왜 이래요?”

처자는 꽤나 용감한 편이었다. 적지 않은 처자들은 자신이 당해도 찍 소리 못 내고 참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경험이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어서 말이다.

“어딜 가려 그래요? 지금 제 엉덩이 만졌잖아요!”

움직이려는 사내놈의 팔을 붙드는 여자애가 보였다. 외모로 봐선 대학생 쯤 되었을까 싶었다. 결국 그렇게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야! 너 아침 댓바람부터 생사람 잡을래?”

“아저씨가 나 만졌잖아요! 그래 놓구 시치미 뗄래요?”

“야! 이 거 어디 조카뻘 되는 년이 멀쩡한 사람한테 독박을 씌워? 너 이 년아 공갈단이야? 증거가 어딨어? 증거가? 미친 년!”

“이 ㄱ새끼야! 나이 처먹구 할 게 없어서 조카뻘 되는 여자 만지구 시치미를 떼?”

여자애도 만만치 않은 데가 있었다.

“좀 도와주세요. 이 사람 좀 못 가게 누가 좀 잡아줘요!”

“뭐? 이게 미쳤나? 꺼져 이 년아!”

여자애에게서 떨어지려 안간힘을 쓰며 문 쪽으로 다가오는 놈. 여자애는 결사적이었다.

“너 같은 건 잡혀서 콩밥 먹어야 돼.”

“이런 ㅆ!”

쬐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한 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 있으면 분명 누가 나설 법도 한데 아무도 안 도와주고 있었다. 지켜보다 쌩 까기 바쁜 인간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중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적어도 난 그 놈이 하는 짓을 얼핏 감지한 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남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난 고개를 흔들며 참았다.

“꺼지라구 이 년아! 뭘 봐 니들은?”

체구가 작지 않은 사내 놈. 사십대는 훌쩍 지나 보였고 운동도 좀 한 것 같았다. 주위의 인간들은 그가 움직이는 대로 길을 비켜주는 정도였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예? 이 사람이 날 정말 추행 했다구요.”

“야 이 거 놔 이 년아! 챙피한 줄 알아라! 그게 그렇게 떠버릴 일이냐? 젠장!”

지하철은 삼성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내가 내릴 역이라 어차피 나도 준비하고 있었다. 사내는 여자애에게 팔을 잡힌 채 역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거 놓으라구!”

사내는 거세게 그녀를 밀쳤다. 난 고개를 한 번 휘이 저었다.

‘내 일도 아닌데.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일은 무슨…… 이 상황에.’

하지만 울먹이며 녀석에게 밀리는 여자애가 눈에 밟혔다.

‘이런 젠장!’

여자애에게 뺨이라도 날릴 기세로 팔을 뻗는 놈이 보였다.

터헉!

“뭐야?”

난 사내놈의 팔을 잡았고 그는 날 곧바로 째려봤다.

“아저씨. 고만 합시다. 잘 한 것두 없는데 조카뻘 되는 애 뺨이라두 때리시게?”

“넌 뭐야? 새끼야. 아침부터 쌍으루 덤벼드네 이것들 봐라. 이것들 뭐야? 한 패거리야?”

“거 참 나이도 꽤 되신 것 같은데 말 뽄새 하구는……”

난 계속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애를 불렀다.

“어이, 아가씨!”

“예?”

여자애는 나를 봤다.

“아저씨. 웬만하면 사과하고 넘어가요. 그게 아저씨한테두 좋으니까. 안 그러면 진짜 성추행범 돼요.”

“이 거 안 놔? 아아!”

난 천천히 놈의 팔을 비틀기 시작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내가 보긴 봤걸랑요. 그니까 정중히 사과해요. 그럼 아가씨도 용서할 거예요. 다신 그런 짓 않겠다고 하면 말이죠.”

난 눈짓으로 그녀에게 그가 용서를 빌면 봐주라는 듯한 눈짓을 해 보였다. 붐비는 지하철역의 행인들은 우리를 보고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너…… 아! 아! 놔 이 새끼야!”

“자꾸 이럴 거요, 정말?”

나도 슬슬 화가 났다. 한 가닥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탔던 객기였을까. 괜히 말려들어서 이런 욕까지 들어야 하는 게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 둘 순 없었다.

“놓으라구 이 새끼! 아…… 아…… 아!”

난 좀 더 옆으로 팔을 비틀기 시작했다.

“이거 안 되겠구만. 지하철 지구대로 갑시다. 아가씨.”

“네.”

여자애는 순순히 내 말을 따르며 지구대 사무실을 찾았다.

빡!

“아!”

순간 방심했었나 보다. 놈이 꺾여있던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가격한 거였다.

“요런 개! 쉬……”

내 입에서도 좋은 소린 못 나왔다. 내 몸에서 살짝 떨어지는 놈에게 일타를 날렸다.

뺘지약! 주먹이 아닌 쫙 편 손바닥으로 귀싸대기를 정통으로 날려 버린 거였다. 원래 굴욕감을 주는데 귀싸대기만 한 것도 없다. 그리고 곧바로 당수로 놈의 뒷목을 내려쳤다.

“커억!”

허리를 수그리며 놈이 주저앉았다.

“새끼, 하마터면 갈비 나갈 뻔 했네.”

속이 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마음 속 한 구석에선 쌈박질 한 번 시원하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맞장 까서 누구 하나 쓰러뜨려 본 지 꽤 되었던 나로선 좋은 기회가 된 셈이었다.

내 앞에 들이닥친 현실의 분통 터지는 일들. 어찌 보면 이 일을 빌미로 자기 위로 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뭡니까?”

사복 입은 사내 둘이 보였다.

“이 아가씨……”

내가 입을 열자마자 말을 가로채며 여자애가 성토를 시작했다.

“이 또라이가 내 엉덩이 만지고 지하철에서 도망가려 그랬어요. 그리고 이 아저씨가 절 도와줬구요. 정말이에요.”

조금은 떨리며 경황없어 보이는 그녀는 그래도 제대로 나를 옹호하고는 있었다.

“일단 모두 가줘야 합니다.”

“아 뭐 그러죠.”

곧 우리 셋은 지하철 역 내부에 위치한 지구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몽롱했다.

“아가씨가 직접 도와준 걸 인정했으니까 법적인 피해는 묻게 되지 않을 거구요.”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사람 도와준 건데.”

난 조금 투덜거리며 당연하다는 듯 지껄였다.

“난 가도 돼죠?”

조서를 꾸민 후 나는 이내 나왔다.

“아저씨.”

지구대 밖으로 나와서 몇 걸음 안 걸었을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어……”

“정말 정말 고마워요.”

여자애가 가녀린 목선의 핏줄을 이완시키며 말을 걸어오는데 그제서야 인물이 보였다. 삼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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