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 가정부
1화
웹소설 작가 - 진환
본문
1화. 네…. 정말… 맛있겠네요.
계절이 바뀌는 탓에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요한 업무만 우선적으로 처리한 뒤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집 대문 앞에 서니 회사 직원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이것들… 아마 사장이 아프거나 말거나 일찍 퇴근했다고 ‘에헤라디야 놀자꾸나.’ 하며 일 할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보냈겠지….’
“어휴, 됐다. 하루 정도야 뭐….”
그런 생각을 한 탓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 지금은 휴식이 먼저다. 회사 생각은 그만하자.’
철컥. 문고리를 돌리고 집 대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따라 문이 참 무겁고 두텁다.
‘어라? 이 사람이 근처 마트에 장이라도 보러 갔나?’
근데 집 안에는 늘 있어야 할 중요한 사람 하나가 없었다. 바로 나의 아내. 오윤서.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식탁이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갈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걸음은 식탁에서 앞에서 멈췄다. 난 식탁 위에 있는 물통을 곧바로 입에 대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잔소리하는 아내도 없는 마당에 컵에 물을 따르는 번거로운 짓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캬….’ 하는 개운한 소리와 함께 목이 마른 듯한 느낌이 싹 사라졌다.
“어… 이게 뭐지?”
그제야 나는 식탁 위에 평소와 달리 웬 작은 쪽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손을 뻗어 쪽지를 들었다. 익숙한 아내의 필체였다. 하지만 쪽지에 담긴 내용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여보, 지금 여보가 이 쪽지를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난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문제와 씨름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고 있겠죠. 당신은 내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둘째 치고 집에서 먹고 편하게 살림이나 하는 여자가 무슨 문제가 있냐며 날 비웃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늘 그랬듯 또 무신경하게 넘어갈지도 모르겠네요. 속 편하게 말을 해주고 싶지만, 이 작은 쪽지 한 장은 그 모든 것을 담기엔 참으로 작군요. 어쨌거나 당분간… 아니 당분간이라는 시간보다 아마 더 오랜 시간 당신을 보지 못할 것 같아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제발 나를 찾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싹싹하고 솜씨 좋은 가정부를 한 명 구했어요. 그 사람이 오늘 저녁부터 나를 대신하여 당신의 모든 걸 도와줄 테니 당신이 회사 생활 하는 데는 어떤 지장도 없을 거예요. 그건 걱정 말아요.”
이 여자, 작은 종이에 참 빼곡하게 많이도 써 놨다. 그래서 결론은 무슨 대단한 고민이 생겨 당분간 가정주부로서의 모든 일을 하지 못하겠으니 가정부가 해주는 서포팅 받으며 잠자코 날 기다려라. 이 말이 아닌가. 이 여자가 미쳤나. 미간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짧은 통화대기음도 없이 들려오는 기계적인 음성.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뚜… 뚜… 딸각.’
‘나는 벙찐 표정으로 통화가 종료된 내 전화기 화면을 보았다. 전화번호까지 없애고… 집을 나가? 정말 이 여자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코로 한숨을 길게 들이 내쉬며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전화기 화면에 숫자 112를 눌렀다. 경찰에 당장 실종 신고를 할 생각이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제발 나를 찾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통화 버튼만 누르고 실종 신고만 하면 되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아내가 남긴 쪽지의 한 문장이 스쳐 간 탓에 차마 그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에이 씨…! 쩝.”
나는 허공에 투박한 소리를 던지며 무미한 입맛을 쩝 다시었다. 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적도 없었고, 사소한 부탁 한 번 한 적 없던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도 모자라 제발 자신을 찾지 말고 기다려 달라 부탁까지 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제법 큰 규모의 스마트폰 게임 회사를 운영하는 나는 매달 억 소리 나게 큰돈을 벌었고 나의 수입은 자연히 아내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경제 침체기에 남들처럼 돈 걱정 한번 안 하고 사는 것도 감사해야 할 마당에 내 아내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아 나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래. 그냥 신경 끄자. 적당히 때 되면 돌아오겠지. 뭐 가정부도 구해놨다니까….’
소파에 누워 몸이 편해지니 덜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챙기는 남편이었다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말이다. 사실 그랬다. 언제 아내와 잠자리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아내와 10분 이상 대화를 나눠보았는지도 모르겠다.
*
‘딩동…. 딩동….’
얼마나 잤을까. 요란한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투박하게 몇 번 턴 뒤 소파에서 일어나 비디오폰 앞에 섰다. 비디오폰 화면 안에는 웬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백옥같이 희고 고운 볼에 보조개 꽃을 피우며 생글생글 예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땠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조수경이라고 합니다.”
“일이요…?”
‘뭔 소리야. 이 집에서 저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할 게 뭐 있다고.’
“네. 이 집 사모님이 집을 비우시는 동안 가정부로 일하기로 했는데… 못 들으셨나요?”
수경이라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곧 아내가 남긴 쪽지의 끝 부분이 떠올랐다.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싹싹하고 솜씨 좋은 가정부를 한 명 구했어요. 그 사람이 오늘 저녁부터 나를 대신하여 당신의 모든 걸 도와줄 테니 당신이 회사 생활 하는 데는 어떤 지장도 없을 거예요. 그건 걱정 말아요.”
‘아….’
“그래, 오늘 저녁부터 온다고 했지.”
‘근데 무슨 가정부가 저렇게 어려? 딱 봐도 25살도 안 돼 보이는데…. 보통 가정부라고 하면 산전수전 다 겪으신 주부 9단 아주머니들이 하시는 거 아닌가?’
난 내 상식을 꽤 벗어난 저 수경이라는 가정부의 비주얼에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해댔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수경이 비디오폰에 얼굴을 가까이하며 되묻는다. 나는 밖에 더 사람을 세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열림’ 버튼을 눌렀다.
“집에 안 계신 줄 알았어요. 계속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요. 아! 근데 사모님께 들은 것보다 집이 훨씬 넓고 좋네요. 우와… 인테리어도 완전 고급스러운 느낌이에요.”
그녀는 좌우로 고개만 서너 번을 요리조리 흔들며 내 집을 살폈다. 좋은 걸 떠나서 넓은 게 뭐 좋다고 저렇게 싱글벙글 웃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집이 넓어봐야 청소할 곳만 많은 건데.
“…….”
“아…! 저녁…! 맞다. 저녁 드셔야죠. 부엌이 어디죠?”
“네…? 아! 저쪽이요.”
내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자 그녀는 ‘짝’ 하고 박수를 한 번 치고는 부엌이 어디냐 물었다. 내 저녁을 준비할 요량인가 보다. 겉보기에는 가정부보다는 모델 일을 하는 게 훨씬 어울릴 것 같은 여자인데 그래도 꼴에 가정부라고 가정부 노릇은 하려는 모양인가 보다.
“처음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넉넉하게 한 30~40분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싱긋 눈웃음을 한번 짓고는 몸을 돌려 쌔끈한 엉덩이를 팔자로 흔들며 집 안 부엌으로 향했다. 짙지도 않고 너무 옅지도 않은 적당한 쌍꺼풀 탓인지 그녀의 눈웃음은 참 보기 좋게 내 눈에 들어왔다. 뭐, 쌔끈한 엉덩이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나는 그런 싹싹한 그녀의 모습에도 금방 경계를 풀지 못했다.
*
“우와 드디어 완성! 오래 기다리셨어요. 다 됐습니다! 식사하세요.”
그 여자의 말대로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짝짝짝.’
그래서인지 시끄러운 박수 소리가 들렸다. 또한, 바로 뒤이어 그녀의 맑고 또렷한 목소리도 들렸다. 얼마나 진수성찬을 차렸기에 저러나 싶어 나는 얼른 소파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앉으세요.”
그녀는 내가 앉을 자리 앞에 수저를 놓으며 생글생글 미소를 보였다. 자리에 앉으며 나는 상 위를 빠르게 스캔했다. 뭐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전형적인 집 밥 느낌이랄까. 마른반찬과 나물 그리고 보자보자… 저 가스레인지 위에 끓고 있는 것은 구수한 된장찌개일 것이다.
아마 반찬들이 둘러싸인 가운데에 위치한 찌개 받침 위에 올려놓겠지. 막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밥과 반찬들을 보니 침샘에 침이 흐르는 것 같아 우선 반찬부터 맛보려 젓가락을 들었다.
“조심하세요. 뜨겁습니다!”
그때 그녀가 활기찬 목소리로 경고하며 된장찌개가 담긴 뚝배기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센 불에 끓인 탓인지 된장찌개는 불을 벗어나서도 보글보글 거리는 퍽 두근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탁’ 소리를 내며 그녀가 뚝배기를 식탁의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열기를 잃지 않은 뚝배기 속의 된장찌개가 바글바글 끓어오르면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나의 그런 표정을 보았는지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넸다.
“맛있겠죠?”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된장찌개에서 그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올리던 나는 의외의 복병을 마주하게 됐다. 고개를 숙인 탓에 그녀의 옷이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자연히 그녀의 가슴을 볼 수 있었다. 허나 그녀는 일반적인 브래지어를 입고 있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복병이었다.
‘저 여자가 입고 있는 건… 아니… 아니야. 저건 입고 있는 것도 아니지. 저… 저건… 분명히 붙어 있잖아. 저 여자가 자기 가슴, 그것도 가슴 한가운데에 붙이고 있는 건 바로….’
‘있잖아… 요즘 여자들이 속옷 불편하다고 젖꼭지에 붙이고 다니는 그런 거…!’
“네…. 정말… 맛있겠네요.”
나는 찰기 있게 늘어진 그녀의 젖가슴을 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움직인다면 찌개가 담긴 뚝배기 보다는 몇만 배는 위력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 같은 저 탐스럽고 아름답고… 퍽 찬란하기까지 한 가슴 말이다! 내 침샘에서 침이 이구아수 폭포 흐르듯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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