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잠입수사
1화
웹소설 작가 -
본문
그녀는 얼굴을 반쯤 가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한 카페에 들어섰다. 검은 가죽 바지를 입은 그녀의 길쭉한 다리와 어딘가 풍기는 묘한 아우라에 카페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거둬졌다. 그녀의 뒤에는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는, 한 눈에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험악한 인상에 굉장히 풍채가 큰 사내가 있었으므로. 그녀는 직원에게서 커피를 받아 들더니, 사내에게 위아래로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카페를 나섰다. 계산을 마친 사내가 그녀의 뒤를 곧장 따라나섰다. 그들이 가는 곳은, 시내의 한 경찰서였다.
선글라스를 벗은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녀의 쌍꺼풀 진 큰 눈과 오뚝한 코, 작지만 다부진 빨간 입술.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고독감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코는 매우 예민해서 어떤 무언가를 한 번에 알아채기에는 충분했으며 그녀의 다부진 입술은 늘 누군가를 공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사내가 자신의 앞에 다시 등장하자마자, 책상을 탁 치며 일어섰다. 그가 자신을 부른 의도를 알아채고, 그를 공격하기 위해.
“지금, 니들 미쳤어요? 내가 왜 다시 그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건데요?”
그녀의 다부진 입술에서 정말 상상도 못할 욕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사내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여자의 욕 짓거리를 듣고만 있었다. 잠시 그녀가 숨을 고르는 듯, 하고 있던 말을 잠깐 멈추자 눈을 뜬 사내는 그녀를 날카롭게 올려 보았다.
“언제까지 과거에만 멈추어 있을 건가. 자네는.”
그녀는 위엄 있는 사내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서 사내에게 할 말 안 할 말을 마구 쏟아내 버렸다. 사내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그런 욕들을 한참 듣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내는 다시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녀는 경찰서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내는 한 걸음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창 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시는, 다시는... 안 해. 그딴 거...”
그녀는 다시 경찰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고, 사내가 미처 붙잡기도 전에 쌩 하니 빨간 오토바이에 몸을 맡긴 채 경찰서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사내의 옆에 한 남자가 다가와 사내에게 작은 종이컵에 든 커피를 내밀며 말한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과연, 저 여자가 그걸 할까요?”
사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한 손으로 자신의 양복 재킷을 툭툭 턴다.
“하, 성질은 좀 ㅈㄹ 맞아도 사건 냄새는 알아서 기가 막히게 맡아서 처리하니... 곧 제 발로 다시 오겠지.”
사내는 남자에게 다 마신 종이컵을 내민다. 사내는 다시 유유히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고, 남자도 그를 뒤따라 들어간다.
“다시 구리구리한 그 짓거리를 하란다. 나한테...”
여자는 다 젖어 버린 검은 긴 머리칼에 하얀 수건을 걸치고, 몸에는 가운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거실을 거쳐 곧장 널찍한 부엌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굉장히 심플하고도, 깔끔했다. 벽지와 바닥이 온통 하얗고 뽀R다. 마치 그녀의 피부처럼... 그녀의 어깨와 오른쪽 귀 사이에는 전화기가 끼워져 있었고, 그녀는 한 손으로 자연스레 커피를 내렸다.
“한 잔, 두 잔... 언제쯤 와?”
커피를 내린 그녀가 인터폰을 향해 걸어갔다. 곧 딩동 - 소리가 울리고, 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그를 맞이했다. 훤칠한 키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그의 한 손에는 비닐봉지가 매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굉장히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나 곧 비닐봉지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나 술은 안 한다니까... 못 하는 거 뻔히 알잖아. 왜 이래?”
그는 현관문 앞에서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뒤돌아서는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확 감싸 뒤돌아 세웠다. 하얀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의 팔에는 핏줄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그는 이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자신의 몸 쪽으로 확 당겼다. 그는 그녀를 진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고, 그녀는 매우 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가까이 들이대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정강이를 힘껏 발로 걷어 차 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을 탈탈 털어대더니. 이내 그의 목을 자신의 한 쪽 팔로 확 감싸서 잔뜩 힘을 주었다.
“이 시키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곤, 정신 안 차려?!”
그는 항복한다는 듯이, 두 손바닥을 들고는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겼다는 표정으로 괴로워하는 그에게 커피를 쓱 내밀었다. 그는 숨을 못 쉬겠다는 듯이 켁켁 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아직 실력 그대로네... 하, 들어가서 마실게.”
그는 쭈뼛거리며 현관문 앞에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하얀 소파에 기대었다. 그는 그녀가 내린 커피를 코로 살짝 음미하더니 한 번에 들이켰다. 그녀는 그런 그가 귀엽다는 듯이, 한 쪽 손을 턱에 괴고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훑듯이 천천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가 결국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동생아,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
그는 이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아까의 그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다시 바라 보았다. 그녀는 그를 향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오늘은 왠지 그 사람이 더 생각나는 날이야.”
그녀는 소파 위에서 그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그녀가 아까 입고 있던 가운은 소파 밑으로 툭 떨어져 있었다. 매끈한 알몸으로 누워 있던 그녀는 창 밖에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쓸쓸함과 고독감이 아까보다 더 진하게 배어있었다. 그도 그녀의 감정에 물든 듯이,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새 다 말라 버린 그녀의 머리칼을 계속 쓰다듬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자신의 알몸을 돌려 마치 비처럼 쏟아지려는 눈물을 그의 하얀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어 슬쩍 감추었다.
다음 날, 그는 그녀의 집 밖을 나서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집 아래 주차장에서 그녀의 오토바이를 찾아내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 사이에 그의 전화기 안으로는, 여보세요 - 라는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누나, 다시는 그 짓거리 안 합니다. 다시는.”
그는 전화를 뚝 끊고, 그녀의 오토바이를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을 나섰다.
사내는 그 전화를 받고, 한숨을 무겁게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넘기며 으으음 - 신음 소리와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사내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커피를 내밀며 슬쩍 눈치를 보더니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5년 전까지 잠입 수사의 여왕이자 여신으로 군림하셨다는.. 어제 오셨던 그 분이십니까?”
사내는 그녀가 가져다 준 커피를 들이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내는 서류 뭉치에 집중하며 그 여자에게 휙 - 손짓했다. 그러나 여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그러면 그 분과 같이 범죄조직 소탕에 신 급에 다다랐다는...”
사내가 그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째려보듯 바라보자, 결국 여자는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내는 자신의 두 번째 손가락으로 서류의 글자들을 가리키며 똑, 똑 소리를 냈다.
전 특수부 소속 마약 수사관 유휘인.
그녀의 이름이었다.
“양명훤, 이 멍청아. 너 우리 집에 소주 놓고 갔다. 언제 오냐?”
그녀가 비닐봉지에 담긴 세 병의 소주를 들어 보이며 즐거운 듯, 그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거실에 놓여 있던 TV에는 예능 프로그램 소리가 자그맣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녀는 그와 마구 웃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고, 그의 화면은 그의 얼굴이 아닌 어느새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장난스럽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야, 야.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글쎄, 왜 그러냐구우.”
그러나 이내, 그가 왜 그러는지 나중에 그녀도 알 수가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며 TV로 향했고, TV에는 어느새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톱 연예인 A씨 국무총리 아들과 마약 투여... 연예계와 정치계 다 쑥대밭 되나. -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물며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와의 영상 통화는 끊겨져 있었고, 전화기 화면에는 형사부 과장 강경영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약 탐지견이 냄새를 안 맡으려고 하면, 직접 코앞까지 가져다 줘야지.”
형사부 과장 강경영은 경찰차에 몸을 싣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하얀 서류뭉치들이 한가득 이었다. 남자는 운전을 하며 애꿎은 침만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고, 여자는 뒷자리에서 어딘지 들뜬 표정으로 해맑게 앞을 보고 있었다.
똑 똑 -
“...”
똑 똑 -
“...”
똑 똑 -
“...”
“저희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그녀는 초조한 표정으로 거실을 돌아다니며 어디론가 전화만 계속 걸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딸각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유쾌하게 퍼지지 않았다. 그녀는 손톱을 마구 물어뜯으며 하염없이 전화만 걸고 있었다. 그 때, 문 밖으로 절대 들리지 말았어야 할... 그의 목소리가 어둡게 들렸다.
“누나, 나야... 문 좀 열어주지.”
그녀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인터폰을 확인했다. 그와 그 사내. 절대 같이 있지 말아야 할 그와 그 사내가 자신의 집 앞에 동시에 같이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그와 함께 했던 어젯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얼굴을 감싸며 으으 - 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내가 믿어서는 안 될 놈을 믿었나... 어제 별 거 없었잖아.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문을 열어 주었다. 어차피 나는 다시 그 길을 향해 가야 하는구나, 운명에 순응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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