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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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거 시즌 2

동거 시즌 2

1화

웹소설 작가 - 전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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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문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마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처럼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있는 용기를 쥐어짰다.

그리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쾅-

뜻밖에도, 그녀가 내놓은 반응은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홈런을 맞은 투수처럼 우두커니 서서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문 앞을 기웃거렸다.

그녀에게 변명을 해야 할지, 아니면 모른 척 가만히 있어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쪽을 선택하든 그녀가 좋은 인상으로 나를 기억하진 않을 것 같았다.

훔쳐본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좋은 행위는 아니니까.

내가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이 덜컥 열렸다.

진모

“……!!”

나는 유령이라도 본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당연한 일이지만, 열린 문 너머 유령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유령 대신 멀뚱멀뚱 서 있었다.

진모

“아… 저……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그녀의 알몸을 훔쳐보던 나의 모습을 가장 잘 변호할 수 있을까.

두뇌를 수도 없이 굴려 봐도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혀가 제멋대로 굴러갔다.

진모

“…몸매가 정말 좋으시네요.”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소리를 지껄여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머리통을 수도 없이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녀에게 사과하고 비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거 같았다.

내가 애써 당황한 모습을 감추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의외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입가엔 옅은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지혜

“그렇게 몸매가 좋아요? 훔쳐볼 수밖에 없을 만큼?”

진모

“……네?”

지혜

“사실 요즘에 살이 좀 많이 쪄서 스트레스 받고 있었거든요… 여기저기 군살도 너무 많이 보이고 가슴도 둔해진 거 같아서.”

그녀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있었다,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몸은 옷을 입고 있어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대답에 적절한 리액션을 던져주었다.

진모

“아, 아니에요…! 살 안 쪘어요. 가슴도 그 정도면 명품이죠. 남들은 그런 가슴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데….”

생각 없이 말을 이어가다가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멍청하게 또 한 번 성추행에 가까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혜

“언니한테 듣긴 했는데, 역시나 오빠 은근히 밝히나 봐요.”

진모

“…언니? 임 대리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무슨 말을 들으신 거예요?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 그렇게 밝히는 사람 아니에요. 그냥 생각없이 말하다 보니까….”

나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가 나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와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슥-

그녀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진한 로션 냄새와 함께 향긋한 에센스의 체취가 풍겨 왔다.

마치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한참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혜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 보여요.”

진모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생긋 벌어지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꽃물을 들인 것처럼 다홍색으로 달아오른 입술, 그 입술 안에서 움직이는 혀가 묘한 매력을 선사해주었다.

지혜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못 했네요. 배지혜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진모

“아, 네…… 최진모라고 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지혜

“혹시 언니에게 저에 대해 들으신 게 있으세요?”

진모

“글쎄요… 고향 후배라는 것 정도?”

지혜

“효진 언니랑 저는 거의 자매나 다름없어요. 어릴 적부터 철이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쭉 같이 지냈거든요.”

묻지도 않은 질문을 술술 잘도 대답하는 여자였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진모

“그럼 혹시… 저랑 임 대리가 어떤 관계인지도 들으셨나요?”

내 질문은 두 가지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는지.

그리고 효진이 평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두 가지 사실이 다 알고 있었다.

나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옅은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더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나의 눈을 피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현관문 밖에서 귀에 익은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사뿐히, 그러나 날카롭게 바닥을 찍는 하이힐의 소리.

지난 1년 간 내 귀에 익숙하게 맴돌던 그 소리.

효진이 계단을 내려올 때 나는 소리였다.

나와 내 앞의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끼익-

현관문이 열리며 효진이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효진

“나 왔어.”

지혜

“언니!”

효진

“지혜 왔어?!”

음색이 두 단계쯤 올라간 목소리가 거실에 가득 찼다.

두 여자는 잔뜩 높아진 톤으로 서로를 얼싸안고 호들갑을 떨며 그간의 안부를 묻거나 보고 싶었다는 둥, 들으나마나 한 인사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초대 받지 못한 손님처럼 그녀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효진은 나나 회사 사람들을 대할 때와 영 딴판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카리스마 있고 세련돼 보이던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한없이 상냥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잔뜩 흥분해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집 주인인 나에게는 아무 설명도 없이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드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진모

“흠흠…!”

짐짓 헛기침을 하여 잔뜩 흥분한 두 사람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지혜라는 여자는 잊고 있던 사실이 생각난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신나게 재잘거렸다.

지혜

“아, 맞아! 방금 오빠랑 인사했어. 서로 통성명도 했고. 밥 같이 먹기로 했는데 메뉴는 아직 안 정했거든. 언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효진

“…….”

효진은 지혜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이 무표정하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나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고 표정으로 말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라는 눈빛을 던졌다.

효진은 지혜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효진

“설명이 필요해?”

진모

“당연한 거 아니야?”

효진

“…….”

효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지혜를 바라보았다.

지혜는 곧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혜

“저는 그럼 언니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효진의 방에 들어간 뒤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효진을 바라보았다.

효진은 자연스럽게 내 방 문을 열며 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효진

“안에 들어가도 될까?”

진모

“…….”

나는 아무 말 없이 효진을 따라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의 침묵이었다.

방 안에 들어온 효진은 문을 살짝 닫더니 잠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효진

“흐음…….”

의미를 읽을 수 없는 한숨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정확한 대답을 요구했다.

효진은 팔짱을 낀 채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효진

“보고 싶었어.”

진모

“…?!”

앞뒤 맥락이 하나도 없는 대답이었다.

당황한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느닷없이 그녀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입 안으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혀가 들어왔다.

진모

“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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