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아득한
1화
웹소설 작가 -
본문
아스팔트를 녹일 듯이 강렬하게 내리쬐던 태양이 밤의 차가운 냉기에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쿵쿵 울려대던 음악도, 목구멍을 까칠하게 만든 향기도 나지 않는 밤이었다. 오직 두 시선만이 서로를 갈망하며 마주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2시간. 당신과 함께할게요.”
“2시간은 너무 야박한 것 아닌가?”
“야박하다고요?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두세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아침까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그저 빨리 이 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처음, 호기를 부리고 이 남자와 함께 호텔에 들어왔을 때까지는 당당하게 리드를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점점 남자의 부드러운 시선에 내 목적이 사그라질 것만 같았다.
“처음 만난 남자랑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 말은 양가감정을 가진 내 마음을 포장하기에 적절했다. 여기까지 그를 데리고 온 건 순전히 내 욕망 때문이었다. 가져서는 안 되는 금단의 마음을 품은 것처럼, 두려웠고 그 반대로 몹시 떨렸다.
“참 매력 있어. 당신.”
그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뜨거운 눈길 함께 부드러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디찬 손이 피부에 와 닿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욕망에 찬 눈빛으로 내 입술을 머금었다. 순식간에 포개어와 젖어들었다. 거친 숨이 훅 몰아쳤다. 부드럽게 스며들 거란 기대감이 단박에 무너졌다. 그의 키스는 거칠며 강하게 입안을 휘저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이상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저 호흡을 나누는 키스일 뿐인데, 긴장이 풀려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 아으흣.”
그의 입술이 목에 내려앉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고 말았다. 뜨겁고 아찔한 입술이 내 온몸에 스며들어왔다. 거친 손은 얼굴을 쓰다듬더니 이내 귀와 목을 어루만졌다. 순간, 내 피부에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더니 말이 쏟아졌다.
“긴장 풀어. 그리고 제대로 즐겨. 당신이 원한 것이니까.”
남자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고, 거침없는 손길로 나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후회는 없었다. 오늘의 이 선택이…. 내 선택은 옳았다.
*
2시간 전.
TOP 클럽 안으로 발을 들인 나는 긴장한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청심환을 먹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약국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클럽 입구는 기다란 복도를 지나야 비로소 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흔들리는 조명.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 소리에 미간이 찡그려졌다. 적응되지 않은 탓이었다. 가끔은 이런 광란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내 미소를 지켜보던 직원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혼자 오셨습니까?”
“네. 혼자 왔어요.”
“혹시, 지갑이나 귀중품이 있다면, 여기에 보관하고 들어가세요. 분실 위험이 있으니까요. 진짜 본인 이름은 안 쓰셔도 되지만, 휴대폰 번호는 꼭 적어 주셔야 합니다. 만일의 경우 연락드릴 수도 있어요.”
“꼭 적어야 해요?”
“예. 이곳, 룰이라서요.”
그 만일의 경우가 무엇인지 따지고 든다면,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았다. 나의 밤은 길지 않으니까. 룰이라는 말에 나는 내 이름을 다 적을까 하다 이내 Young이라고 쓰고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클럽이 다 같은 클럽이 아니구나. 감탄했다. TOP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자들은 슈트를 빼입었고 여자들은 제 몸매를 드러날 법한 옷을 입었다. 이런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다니. 나도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되었다. 혼자 왔으니 춤을 추러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나는 바텐더가 있는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룸에서 나온 남자 둘이 기둥을 사이에 두고 내 앞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누가 여기 춤추러 오냐. 여자 꼬시러 오는 거지.”
“이런 곳에서 제정신인 여자를 만나겠냐? 갈래.”
마치 동굴 안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남자의 음성이 나지막하고 그윽하기 그지없다.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했지만, 꽤나 진지한 남자의 말에 귀가 저절로 열렸다.
“도진아. 나 유배 풀린 기념이라니까, 누가 사귈 여자 만난다고 했냐? 욕구를 분출하려는 상대를 찾는 거지. 가만 보면 넌, 너무 고리타분해 그냥 술이나 마시고 있어. 여자는 내가 꼬실 테니까. 여기 물 좋더라고.”
“시끄러워서 네 목소리도 안 들린다.”
“야. 여자들도 여기 왜 오는 줄 아냐? 어떻게 돈 많은 놈 만나서 애인 삼으려고 하는 거지. 여자들이 원나잇을 바라겠냐? 사귀자고 매달리고 이것저것 사달라고 하겠지. 난 뭐, 다 사줄 의향이 있다.”
키가 큰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안경 쓴 남자의 말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자도 보는 눈이 있거든요! 이거 왜 이러세요.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여길 와서 뭘 하겠다고.”
“푸핫. 이 새끼. 뭐래? 순수라고 했냐? 여기서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아? 남자들에게 여긴 그냥 즐기기 위해 오는 거야. 너처럼 도 닦는 인간들을 위한 환락의 공간.”
“미X놈. 내가 무슨 도를 닦아?”
“너, 스폰서 마담이 소개해 준 여자 딱 세 번 자고 끝냈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이 바닥에 소문 쫙 났어. 새끼야. 정자를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나중에 애 만들 때나 쓰려고 하는 거냐? 고이면 썩어. 방출해야지. 오죽하면 천하의 윤도진이 게이에 고자라는 소문이 돌겠냐. 내가 다 너 생각해서 마담이 소개해 준건데, 왜 좀 더 만나지 그랬어?”
“욕구를 왜 꼭 여자한테 풀어야 되냐? 혼자서도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
“허, 이 새끼. 자위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 섹X가 싫으면 애인을 사귀면 되겠네.”
“섹X하기 위해 애인을 사귄다고? 미친 새끼. 너 같은 마음을 먹고 여자를 사귀니까, 바람둥이 소리를 듣는 거야. 무슨 진심이 없어. 여자가 장식이냐? 몇 번 섹X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게?”
“하, 이러니까 소문이 돌지. 게이 도진. 고자 도진.”
듣지 않으려 했지만, 귀에 착착 감겨오는 목소리에 발길이 멈춰 섰다. 이건, 순전히 저 남자의 목소리 탓이다. 그런데 웬걸. 185㎝는 족히 넘는 키에, 다부진 몸매의 소유자가 아닌가! 누구라도 저 남자를 보면 시선이 따라갈 법했다. 목소리도 좋은데 몸까지 좋은, 귀한 실루엣을 가진 남자였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남자는 친구와 티격태격하더니 이내 바텐더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남자의 친구는 안절부절못하며 남자를 따라갔다.
“야. 여기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해. 너 나갈 때 들어온 여자 섹시하지 않냐? 골반 라인이 예술이던데.”
“별로.”
“하, 미X놈. 하긴 넌 가슴이 큰 여자한테 꽂히니까.”
“가슴 큰 여자 말고, 적당히 봉긋 솟은 가슴이지.”
“미X놈.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 거지. 난 가슴이 엄청 큰 여자가 좋아.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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