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찰아저씬데요?
1화
웹소설 작가 -
본문
“끄윽..하아 취한다아~”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과 가지는 술자리 모임에서 기분이 좋아 주는 술을 다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버렸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 송이의 모습이 꽤 위태로워 보였다.
“아 딸기 우유….”
술 마시고 나면 꼭 딸기 우유를 먹는 습관 때문에 아무리 취한 상태여도 꼭 편의점을 찾는 송이는 마침 환하게 빛을 내며 자신을 부르는 듯한 편의점 간판에 홀린 듯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큼..어서오세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인사를 하는 알바생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곤 곧바로 딸기우유를 찾았다.
“어..딸기우유..!”
반가운 마음에 손을 쭉 뻗어 딸기우유를 집으려는 순간 뒤에서 커다란 손 하나가 쑥 하고 나와 하나 남은 딸기우유를 빼앗아갔다.
“어?”
당황한 송이가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멀끔한 남자 한 명이 하나 남은 딸기우유를 벌써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어..저!그거!”
송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계산을 마치고 저만치 걸어갔다.
“저기요!”
멀어져 가는 딸기우유를 도저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던 송이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높은 굽을 신고 달려가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뭡니까?”
“그..그거요..”
“네?”
“딸기우유..”
무작정 붙들고는 딸기 우유 타령을 하는 여자의 모습에 제영은 어이가 없었다.
“딸기우유요?”
“그 딸기우유 저 주시면 안 돼요?”
“뭐라고요?”
다짜고짜 딸기우유를 달라니, 제영은 이 여자가 술 취해서 헛소리를 하나 싶어 잡힌 팔을 뺐다.
“저..그거 꼭 먹어야 하는데..”
“허..”
송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아저씨...그거 저 주세요 네?”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딸기 우유 좋아하는데,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닙니다.”
자꾸만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송이를 피해 제영은 딸기우유를 들고 있는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흐잉 딸기우유 줘요~!네?”
제영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 딸기우유만 애처롭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대는 송이의 모습에 결국 제영은 팔을 내려 딸기우유를 송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여기 됐습니까?”
“와아 감사합니다!!”
손에 들려진 딸기우유에 아이처럼 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니 무슨 딸기우유 하나에 저렇게 좋아하지..’
“감사합니다아!”
허리까지 90도로 숙여가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려던 송이는 다시 뒤돌아서서 저만치 걸어가는 제영의 손목을 붙들었다.
“뭡니까 또?”
“이렇게 그냥 뺏어가면 제가 너무 마음이 안좋아서요오.”
“그럼 다시 돌려 줄 겁니까?”
“아니!! 그건 안되고!”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제영을 피해 얼른 뒤로 한발 짝 물러나는 송이다.
“다음에 꼬옥!! 사드릴게요!”
“됐습니다.”
“명함 같은 거 있으면 주세요!!”
“괜찮으니까 그냥 가세요.”
송이는 뒤돌아서는 제영의 앞으로 다가가 턱 하고 막아섰다.
“명함 안 주면 안 갈래요.”
“하아..”
뜬금없는 명함 타령에 어이가 없어진 제영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명함 한 장을 송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됐죠. 이제.”
“내일 꼬옥~연락할게요!”
***
“으아..무울..”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잠에서 깬 송이는 눈 뜨자마자 냉장고 앞으로 달려가 벌컥 물을 들이켰다.
“흐아 죽겠다.”
물 한 통을 거의 다 비우고 나서도 타는 듯한 갈증과 숙취가 해결되지 않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송이는 해장국이라도 먹으러 나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어?”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서 나가려던 송이는 지갑 사이에 껴있는 명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지?”
‘하제영 경위’
“경위면...경찰 아닌가? 그 그 박해영 경위님처럼? 이런 게 왜 내 지갑에….”
일단 쓰린 속 좀 달래고 나서 생각해야지 하고 집을 나서려던 송이는 문득 주방에 얌전히 놓여 있는 딸기우유를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딸기우유!!”
모든 것이 기억 난 송이는 나가려다 말고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전화해야겠지..? 아..어떡하지..”
명함에 손때가 타도록 만지작거리던 송이는 결심한 듯 휴대폰을 들어 꾹꾹 명함에 찍혀있는 번호를 눌렀다.
[하제영 경위입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들린 제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어제 딸기우유..”
[꼭 연락한다더니 약속 잘 지키네요.]
“제가 어제는 술을 좀 많이 마셔서..실수를..했어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괜찮으시면 오늘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죠.]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한 송이는 쓰린 속을 쓰디쓴 아메리카노로 달래며 제영을 기다렸다.
똑똑//
아메리카노 얼음까지 와작 ㅆㅂ어 먹으며 숙취 해소에 열중하던 송이는 똑똑하고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얼른 컵을 내려놓았다.
“어어..!”
“오늘은 딸기우유 안 마시나 봐요?”
“아...”
하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을 한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물음표를 가득 단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봤다.
“나 경찰 맞습니다.”
그러자 제영은 안주머니에서 ‘경위 하제영’ 자신의 사진이 뚜렷하게 박힌 경찰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
“이제 앉아도 됩니까?”
“아..네네!”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살포시 미소를 짓는 송이다.
“어제 딸기 우유 맛있었어요?”
“아..네..죄송해요 제가 어제 술에 취해서...아니 제가 미쳤었나 봐요. 제가 경찰아저씨 우유를 뺏어 먹다니..그래서 제가 이거 사 왔거든요….”
송이는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단지 모양 딸기우유 하나랑 바나나 우유 하나를 꺼내 제영에게 내밀었다.
“이거..드세요.”
“바나나 우유는 뭡니까?”
“아..이거 원 플러스 원하는데 딸기우유가 하나밖에 안 남았더라구요 그래서 바나나 우유로 가져왔는데..아 빨대 여기..”
제영은 딸기 우유에 빨대를 콕 찍어 송이 쪽으로 밀었다.
“먹어요.”
“네?”
“경찰이 들고 있던 우유를 겁도 없이 빼앗아 가고 그러는 거 보면 나보다 더 딸기우유에 대한 열정이 큰 거 같아서.”
“아니..전 괜찮아요..아저씨 드세요..전 그럼 이만..”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제영의 말투에 기분이 상한 송이는 딸기우유를 다시 제영 쪽으로 밀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기우유는 그쪽이 다 먹고 해장이나 하러 갑시다.”
“네?”
***
“이모 여기 콩나물 해장국 둘이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제영과 마주 앉은 송이는 어색함에 앞에 놓인 물만 벌컥 들이켰다.
“물 더 줄까요?”
“아..아뇨.”
“얼른 먹어요, 해장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얼굴인데.”
“아..네.”
아니 경찰이라며,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경찰도 밥 먹을 시간은 있습니다.”
“네?”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들킨 것 같은 기분에 화들짝 놀라 제영을 바라보자 제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앞에 놓인 깍두기를 입안에 쏙 넣었다.
“먹어요.”
“아..네.”
해장국이 앞에 놓이자 뭔가를 아는지 고요하던 뱃속이 요동을 쳤다.
송이는 체면이고 뭐고 얼른 숟가락을 들어 뜨끈한 국물 한 숟갈 퍼먹었다.
“으어..”
국물이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헙 하고 입을 막은 송이다.
“크흡..”
들었구나..들었어...제영의 웃음소리에 송이의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렸다.
“크큼..먹어요.”
“아..네.”
식사를 마친 제영과 송이는 사이좋게 박하사탕 하나씩 입에 물고 나왔다.
“그럼 전 이만..”
“이름이 뭡니까?”
“아..송송이요.”
“송송이..?”
“네..성이 송 이름이 송이..”
“아..이름 특이하네. 뭐 그럼 가요. 우유는 뭐 잘 먹을게.”
“아..네.”
그렇게 딸기우유 경위님과의 인연은 거기가 끝인 줄 알았다.
***
“그래서 경찰 아저씨한테 완전히 찍혔다고?”
“어..내 이름도 알아..”
“그래서 그 경찰 아저씨 잘생겼어?”
“어..?어...”
송이는 어제 본 제영의 생김새를 떠올렸다.
“키도 꽤 컸고, 되게 어리게 생겼던데..순둥순둥 하게 코도 되게 높았던 거 같고..아무튼 경찰 같진 않게 생겼어.”
“야..잘 생겼네! 나 그 경위님 번호 좀 알려줘.”
“뭐?”
“잘 생겼다며..”
“야..그게 문제냐 지금?! 나 잡혀가는 거 아냐? 막 절도죄..이런걸로.”
“무슨 딸기우유 하나 가지고...절도죄까지...아마..될 수도 있겠다.”
“뭐?”
“어쨌든 빼앗은 거 아냐.”
심각해진 은애의 얼굴에 송이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송이 누나!”
수업이 끝났는지 해사한 얼굴로 뛰어와 송이의 손을 붙드는 민석의 손을 은애는 찰싹하고 내리쳤다.
“아!아파요 선배.”
“송이는 누나고 난 왜 선배야?”
“아 그야 송이 누나가 더 좋으니까..”
“그 입 다물어라 강민석.”
“헤헤 누나 밥 먹었어요?”
은애의 따가운 눈총에도 민석은 헤헤 웃으며 송이의 끼니를 챙겼다.
“어?아니..아직.”
“그럼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아..나 바로 수업 들어가야 해서..미안.”
“아 그럼 누나 잠깐만요!”
민석은 뒤로 메고 있던 백 팩을 앞으로 메더니 가방을 열어 뭔가를 찾는지 뒤적거렸다.
“아 찾았다!”
“어?”
“누나 이거 먹어요!”
민석의 손엔 핑크빛 딸기 우유가 들려져 있었다.
“어..딸기우유..”
“누나 이거 딸기우유 좋아하잖아요~”
“어..어 고마워..”
“헤헤. 누나 혼자 먹어요. 은애 선배 주지 말고.”
“그래..”
그 모습을 본 은애는 깔깔거리며 송이의 손에 들려 있던 딸기우유를 빼앗아 들었다.
“야 강민석 너 틀렸다 송이 이제 딸기 우유 안 좋아할걸?”
“네?누나 딸기우유 싫어해요?”
“아..아냐 고마워 민석아 얼른 가봐~”
“네~누나 그럼 다음에 봐요.”
손까지 팔랑팔랑 흔들며 인사를 하는 민석의 모습에 송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냐?”
“어?”
“연하가 누나누나 그러니까 좋냐고.”
“아 민석인 그냥 동생이지.”
“강민석한테는 너 여자일걸?”
“에이 아냐~그냥 내가 잘해주니까 잘 따르는 거지.”
“조만간 강민석이 송송이한테 사귀자고 한다는 것에 내가 지금 입은 이 신상 원피스를 걸지.”
“김칫국 드링킹 하지 마시죠 오은애양.”
***
지루한 수업이 끝나자마자 은애의 손에 이끌려 후배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게 된 송이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아니 저번에는 동기 모임이고 오늘은 후배들과의 모임이라니 무슨 매일 술자리가 대기하고 있어..”
“자자!!우리 송송이 양이 우울한가 보다 얘들아 잔 채워~”
은애를 필두로 맥주잔 가득히 소주와 맥주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끄으..”
보기만 해도 아까 먹었던 학식이 올라올 거 같은 기분에 고개를 젓자 그걸 본 은애가 아주 친절하게 송이의 손에 소맥 콜라보레이션이 가득 찬 아름다운 잔을 꼭 쥐어주었다.
“나 먹으라고?”
“자자 우리 선배님 원샷 하신덴다~”
호우~!!송선배!송선배!
아 저것들은 이럴 때만 선배 찾지..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송이는 코까지 손으로 꼭 막고 꿀꺽 그 잔을 비워냈다.
“자자 우리 후배님들도 얼른 원 샷?”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한 잔 두 잔 잔을 비우던 송이는 후배들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딱 정신 잃기 바로 직전 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후아..”
버스를 타려던 송이는 찬바람을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송이는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한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었다.
“어? 땅이 자꾸 앞으로 와..어?자꾸 인사하네..안뇨옹~”
풀썩//
“어 어?!!”
땅이 자꾸 인사한다며 비틀거리던 송이가 바닥과 입맞춤하기 전에 누군가 송이의 허리를 확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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