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 설렘 반의 심정으로 카페를 오픈했지만 역시나 우려했던 일들이 발생했다. 올라오는 경험담들이 죄다 허구에 가깝다는 거였다. 성인소설의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태반이었다.
자기네들은 사실이라고 우기지만 성인소설 마니아인 내 이목을 피할 순 없었다. 한숨 밖에 안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올라온 경험담들을 읽으며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을 때였다.
‘친구엄마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거였다. 재빨리 클릭해서는 세심하게 읽어나갔다. 그리곤 입을 점점 함지박하게 벌리고 말았다. 예감대로 이건 월척이었다. 드디어 월척이 걸린 것이다.
* * * * *
저는 우수한(가명)이라고 서울로 유학을 온 21살의 대학생입니다. 제가 이렇듯 여기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친구엄마와의 말 못할 고민 때문입니다. 설마 제가 엄마뻘 되는 여자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죄송하고, 무엇보다 친구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합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제가 친구의 집에 얹혀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발, 미치겠네. 갑자기 300만원이나 올려달라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어리다고 아주 봉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네.”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책가방을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푸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전세 값이 아무리 널뛰기를 한다지만 1, 2백도 아니고 무려 3백만 원이나 올려달라고 하니 거친 욕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태수(가명)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뭔 일인지 물어온다.
“야야~ 땅 꺼지겠다. 젊은 놈이 뭔 한숨을 그리 내쉬어 대냐? 뭔 일 있냐?”
“아아, 그러니까 내가 세들어 사는 집주인이 말이지…….”
이야기를 다 들은 태수는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불쑥 이런 말을 내게 건네는 거였다.
“너, 그럼 우리 집에서 하숙 안 할래? 엄마한텐 내가 잘 말해서 밥값만 받게 해줄게. 어때?”
태수의 돌연한 말에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야만 했다. 누구보다 태수네 가정형편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이혼가정으로 엄마와 단둘이 사는 모자가정(母子家庭)이었다. 거기에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아 14평형 투룸에서 산다고 들었다. 그러하니 말은 고맙지만 괜스레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태수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권유를 해오는 거였다.
“왜, 우리 집이 좁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런 거라면 염려마라. 나, 다음 달부턴 집에 없을 테니 너 혼자 내 방 쓰면 될 거다.”
“잉? 그건 또 뭔 소리야?”
그러자 태수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종이쪼가리 한 장을 내게 내민다.
“입영통지서다. 다음 달이면 군대 끌려간다. 시발~”
녀석의 풀죽은 목소리를 듣자 나까지 덩달아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연유로 결국 태수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나, 군대 가기 전까지 네가 우리 집에 들어와 내 기쁨조가 되어다오, 친구야~”
그제야 녀석의 얼굴에 조금은 생기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태수는 내일이라도 당장 짐 싸서 들어오라고 했지만, 이것저것 정리할 것도 있어서 이사는 다음 주로 미루었다.
그래도 1년 반 동안 자취를 해온 탓에, 냉장고며 TV며 가전제품들이 많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짐정리를 끝내고 막상 태수네로 이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수한아, 어쩌냐? 갑자기 울 아버지가 보잔다. 내일부터 장기 해외출장이라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다는데…… 어쩌지?”
이삿짐을 같이 날라주기로 했던 태수가 아버지와 갑작스런 약속이 생겨버린 것이다. 오늘 아니면 군대 갈 때까지 얼굴보기가 힘들다는데 어쩌겠는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이삿짐이 별로 없으니까 정말 다행 아니냐? 자아, 이건 우리 집 주소. 아마 지금 시간이면 집에 엄마도 와있을 거야. 좀 도와 달라 그래.”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만 달랑 건넨 채, 사라지는 녀석을 보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부자 간의 연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태수가 적어준 주소지에 도착하니 5층의 원룸형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겉모습만 보자면 독신이나 신혼부부가 살기에 딱 적합한 장소 같았다.
용달기사 아저씨와 함께 이삿짐을 내린 뒤 아저씨는 돌려보냈다. 이삿짐을 집까지 올려달라고 하면 돈을 더 요구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태수 말대로 이삿짐은 별로 없었지만, 6월의 찌는 듯한 더위에 4층까지 몇 번이고 오르내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한숨만 내쉴 수는 없는 일, 워밍업 차원에서 작은 짐 하나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태수네가 사는 402호 현관문 앞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하지만 몇 번이나 벨을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집에 어머니가 와계실 거라더니 아무도 없는 모양이네.”
별수 없이 태수에게서 건네받은 현관열쇠로 문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여기 오기 전 건네받은 열쇠였다.
집안은 작고 비좁았지만 깔끔히 정리된 게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일단 거실 겸 주방에 짐들을 부려놓았다. 그런 식으로 수차례 짐을 옮기자 온몸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