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좋아하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다. 물론 버스도 가끔은 애용할 때가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소매치기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는 역시 지하철이 최고다.
오후 2시를 넘긴 시각-
마침 승강장 앞에 서서 신문을 펼쳐 들고 있는 아저씨의 양복바지 뒤로 갈색빛이 도는 장지갑 하나가 민경의 눈에 띄었다. 뒷주머니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귀여운 그놈을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즉시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슬며시 한 손을 뻗었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는 세심함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었다.
그녀의 손이 뒷주머니 안의 지갑을 거의 빼내었을 찰나 너무나도 눈에 익은 8자 모양의 금속성 팔찌가 ‘짤랑’거리는 경쾌한 소리를 울리며 민경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며 동그란 원을 그려내고 있는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순간 온몸이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굿모닝! 너 오늘 딱 걸렸어.”
“으악!”
하필 우정우 형사가 민경의 범행 현장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을 엉겁결에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었고, 신문 읽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아저씨는 지금의 이런 긴박한 대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빙글빙글 수갑을 돌리고 있는 정우와 시선이 마주치자 민경은 반갑지도 않은 불청객으로 인하여 졸지에 독 안에 든 쥐새끼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헤헤헤!”
그를 향해 민경은 비굴한 웃음부터 터트려 주는 센스 또한 잊지 않았다.
‘어떻게든 토껴야 할 텐데.’
그러나 그가 이처럼 민경의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으니 출입구 방향을 향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내가 당신한테 쉽게 잡힐 것 같아?’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재빨리 승강장 밑으로 뛰어내렸다. 이러한 돌발적 행동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가늘고 연약한 손목 위에 보기 흉한 팔찌를 차게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찰한테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는 건 굉장히 쪽팔린 일이었다.
“어? 어?”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격에 정우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반대로 민경은 매우 여유 있는 미소를 활짝 지어 보였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엥? 이건 또 뭐야?
그녀의 입가에 걸쳐있던 여유 만만한 웃음은 금세 경악의 빛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누가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하는 여자의 다급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무심결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은 승강장 아래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이 철로 바닥 위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이었다.
‘꼬마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일제히 사람들의 시선이 민경을 향해 꽂혀 들었고, 그 수많은 시선들은 그녀더러 빨리 아이를 구해주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난 그런 착한 X이 못 된다고!’
속으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재빨리 민경은 꼬마를 승강장 밖으로 밀어버렸다.
“엄마!”
승강장 밖으로 떠밀려 나온 아이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던 지하철이 커다란 경적 소리를 울리면서 순식간에 그녀 코앞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난 이렇게 결혼도 못 해보고 처녀 귀신으로 죽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우 형사한테 순순히 잡혀 버리는 건데…….’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민경은 그 흔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깜깜하기만 할 뿐이었다.
“야! 위험해!”
정말 간발의 차이로 정우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어 올린 덕분에 민경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고맙네! 우 형사!’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대자로 뻗어버린 그녀의 얼굴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들 사이로 정우의 잘생긴 얼굴도 끼어 있었다.
‘짜식, 누워서 봐도 여전히 인물 하나는 죽이네.’
그러고 보니 민경이 그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시작 한지 벌써 2년 하고도 반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정이라면 정이랄까? 뭐 아무튼 우 형사가 아주 쬐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쉽지만 이쯤에서 작별을 고해야 하겠지?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잊지 않고 하지.’
그를 향해 살짝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민경은 그대로 기절한 척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어머! 기절했나 봐! 어떡해?”
“누가 빨리 구급차 좀 불러줘요!”
“아가씨! 정신 좀 차려 봐요!”
그녀가 기절한 척 꿈쩍도 하지 않자 사람들은 어수선한 외침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하였다.
‘우 형사가 아직 있을까?’
민경은 살며시 실눈을 뜨고 그가 아직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기절한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쉽다! 우 형사의 일그러진 표정을 직접 내 눈으로 봐야하는데……. 다 잡은 고기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셈이니 얼마나 분하고 원통할까? 그렇다고 아이의 목숨을 살리고 기절해 있는 사람한테 수갑을 채울 순 없는 노릇 아니겠어? 우 형사와 내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알고 보면 우 형사도 그렇게 야박한 사람은 아니지. 음 하하하!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는구나!’
***
난생처음 구급차에 실린 민경은 어느 대학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이젠 슬슬 눈 좀 떠볼까?’
마치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대하듯 그녀의 팔뚝에 링거 바늘을 꽂고 몸 상태를 구석구석 체크 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숨 가쁜 몸놀림이 지금 꾀병을 부리고 있는 민경에겐 내심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전문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죽어있는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까 무지 어설픈 자신의 연기가 의료진들에게 금방이라도 들통 날까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다.
“으음…… 여기가 어디예요?”
그녀는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는 척하면서 일부러 기운 빠진 소리를 냈다.
“이제 정신이 들어요?”
아까 아들을 살려달라며 외쳤던 부인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부인 곁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민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쳐다봐라. 꼬마야. 네 시선 영 부담스럽다.’
“제가 기절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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