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남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건드린다. 고민할 때마다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사무실에는 적막을 가르고 시계 초침 흐르는 소리만이 존재를 과시한다. 당장 결재해야 할 내용이 산더미였지만 진영에게는 왼편에 쌓여있는 서류들이 전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모니터 속 멈춰진 영상만이 그의 시야를 사로잡는다.
정지된 영상을 다시 재생시킨다. 곧이어 적나라한 여인의 교성이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진영은 화면 속 열락의 꽃을 피우는 여인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마우스로 영상의 앞부분을 다시 튼다.
‘그녀일 리 없어.’
전라의 여인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손목이나 발목에는 제압하기 위해 묶은 흔적일랑 전혀 없이 깨끗하다. 대신 몸 곳곳에는 멍 자국이 가득하다. 여인은 자처한 것임을 드러내듯 전혀 표정에 미동 없이 다리를 모아 앉았다.
둥근 어깨를 따라 쇄골을 타고 내려오니 새하얀 젖가슴과 연분홍 젖꼭지가 마치 소녀의 서툰 유방처럼 빛을 발한다. 내리깐 눈꼬리 끝에는 색기가 절절 흐르는 듯하다.
가면은 쓴 남자가 나타나서는 여인의 양쪽 무릎에 손을 대어 벌리자, 알아서 다리를 카메라 앞에 벌려 수줍은 음부를 드러낸다.
무성한 수풀 아래로 붉은 속살이 거침없이 공개된다. 앙증맞게 솟은 클리토리스가 작은 부끄러움에 우웅 진동하는 것만 같다. 이건 괜한 착각인 걸까.
진영의 목젖이 크게 오르내린다. 마른침이 삼켜진다. 야들야들한 여인의 나체, 그것도 붉게 핀 성기를 볼 줄이야. 하필이면 그녀의 것을... 여인은 여전히 내리깐 눈을 치켜세우지도, 표정을 일그러트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음부에 손을 가져댄다. 그리고는 중지로 수풀 사이 자리한 음핵을 살살 건드린다. 갑작스러운 자위 쇼를 감상하게 된 진영은 곧이어 인체의 신비를 목도하게 되는데...
몇 초간 살살 음핵을 건드리니 붉은 보지에 물기가 스멀스멀 차오른다. 머지않아 성기가 축축해져 버린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내리깐 여인의 입술이 벌어진다.
“아응... 으응..... 으으으응.......”
물기가 그새 범람하여 회음부로 국물이 새어 흐른다. 여인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위아래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음란하게 울린다.
“으으으응~ 아응.....”
발가벗고 카메라 앞에 드러나는 것은 어떤 수치일까. 하지만 여인은 그런 수치는 전혀 모른다는 듯이 오로지 자신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며 희롱한다.
DRRRRRRR.... .DRRRRRRR....
왼편에 놔둔 휴대폰이 진동을 한다. 석현이었다. 이딴 영상을 보게 만든 주범이기도 했다. 진영은 전화를 무시하고는 계속 영상을 지켜본다.
붉게 달아오른 뺨과 뜨거운 입김, 쌕쌕거리는 숨소리. 도도하게 내리깐 눈길. 그리고 국물을 토해내는 골짜기. 강력한 조명 아래로 눈부신 나신의 솜털과 유륜이 진영의 정신을 뒤흔드는 것만 같다.
가면을 쓴 남자 두 명이 영상에 들어온다. 자기 위로를 하고 있던 여인은 살짝 이들을 쳐다본다. 손 행위를 멈추고는 느릿하게 베개에 몸을 반 기대어 눕고, 음부가 더 잘 드러나도록 다리를 벌린다. 이미 국물이 범람하여 그녀의 엉덩이 밑으로는 끈적한 애액이 고여 있다.
남자 한 명이 그녀의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껴 넣어 그녀의 다리를 붙잡는다. 세상에나. 음문부터 항문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른 남자가 팔뚝만한 바이브레이터를 꺼낸다.
음탕한 욕망과 쾌락으로 훈기가 더해지는 가운데 진영은 이 자극적 영상을 보고도 발기하지도, 불쾌해 하지도 않은 채 진중한 눈빛으로 여인을 지켜본다. 그저 고요히... 열락에 몸부림치는 여인의 나신을 감흥 없이 쳐다본다.
문득 쾌락이라는 이름하에 펼쳐진 폭력적 행위를 펼치는 영상 속 남자들... 자신을 섹스돌로 내놓은 여인도, 그리고 이 영상을 보낸 석현도... 전부 역겹게 느껴졌다.
한심했다. 이 모든 상황이, 영상 속 열기가 더럽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아아아아아앙~~~ 그만...!”
곧이어 여인의 질척한 보지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오르가슴을 겪는 건지 눈을 감고 입을 뻐끔거린다.
토기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사정의 향연이란 말인가. 벌레를 보고 드는 혐오감, 딱 그 감정이다.
‘김수연... 이러려고 날 떠난 거냐...’
그녀가 오줌을 분사하자 남자들이 팬티를 벗고 성기를 들이민다. 영상을 끈다. 지독하기도 하지. 석현이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무심히 휴대폰 액정을 지켜보다가 전화를 받는다.
[야, 영상 봤냐? 저거 김수연 확실하지? 이야... 쟤가 저렇게 야동이나 찍고 대박이다 정말.]
역시나 내 기분을 건드리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한심한 놈. 그대로 통화종료버튼을 누른다. 말을 섞을 가치조차 없다. 갑자기 두통이 이는 것 같았다. 검지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본다.
다시금 석현이 전화를 걸어왔지만 무시하고는 밖에 있는 정훈을 부른다.
키가 크고 멀끔한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PC에 꽂힌 USB를 빼내어 그에게 내밀자 이게 뭐냐며 묻는다. 뭔지는 대답하기 싫다. 입만 더러워질 테니.
“이름은 김수연. 영상 속 여자를 찾아. 되도록 빨리.”
정훈은 별다른 대답 없이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USB를 갖고 방에서 나간다.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감싼다. 기분이 이상했다. 화가 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속이 울렁거렸다. 못 볼 것을 보고 만 것 같다. 9년이 흘렀지만, 그녀를 잊을 수는 없었다. 애써 무시하며 그렇게 9년을 버텼는데...
다시 혼자가 된 그는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이 허공에 나도는 먼지를 감상한다. 복잡한 머릿속은 완전히 숨긴 채.
*
진영이 의자에 몸을 푹 파묻은 채 나른한 표정으로 정훈을 쳐다본다. 고개를 한 번 뒤로 돌려서 목을 스트레칭 한다.
“이쯤 되면 먼저 보고할 법도 한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이내 정훈은 그의 말을 알아차린다. 그가 자신에게 여인을 찾으라고 말한 지 이틀이 지났다. 부러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머뭇거리며 입을 떼는 정훈을 보며 잘 얘기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과 그녀, 무엇이 먼저일까. 회사에 묶여있던 원인이 그녀였지만, 지금 그는 회사 때문에 그녀의 소식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온종일 결재 처리하기 바쁜 와중이다. 안 그래도 브랜드 런칭 행사를 앞두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진영은 정훈에게 시킨 수연에 대한 정보에 모든 정신이 쏠려있었다. 분명 빨리 수연을 찾으라 했건만... 얄밉게도 다른 일거리는 무자비하게 보고하는 녀석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훈이 일부러 보고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부러 다시 물어보는 수고를 겪고 있다.
“영상 속 여자는 이름이 김수연이 아닌 최은수로 확인되었구요. 지금 불법대부업체에 빚이 있는 건지 외곽에서 몸을 팔고 있습니다.”
“최...은수...? 분명 김수연인데...”
생소한 이름이다. 성까지 다르니, 정말 아닌 건가. 하지만 분명 영상 속 여인은 수연이었다. 9년이 지났지만 그런 야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여자는 자신의 기억 속에 단 한 사람, 수연 뿐.
“......... 우선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보지.”
“이사님, 지금 곧 회의 들어가셔야 하는데...”
하지만 진영은 정훈의 말을 무시하고는 일어나 외투를 걸친다. 이내 정훈이 쉽게 포기하고는 문을 열어준다. 앞장서는 진영의 뒷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옆에 앉아있던 비서에게 회의가 취소됐음을 알리고는 진영을 뒤따라간다.
야동 속 여자가 이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런칭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한숨이 나왔지만 애써 티를 내지는 않는다. 진영이 원래 이렇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닌 터라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훈은 불길함이 엄습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경기도로 넘어오고, 정훈이 차를 세우자 진영이 눈짓한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는 무언의 질문이다. 따라오십쇼, 라는 말과 함께 정훈이 먼저 내려서자 진영도 따라 내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도시는 아니다. 기껏해야 2, 3층짜리 상가건물이 전부인 시골동네.
‘이곳에 그녀가 있단 말인가.’
무심하게 주변 풍경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느릿하게 정훈을 따라간다. 그리고 정훈이 걸음을 멈추고 왼쪽 가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의 끝이 향하는 곳을 향해 같이 고개를 돌리자 빨래를 하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브래지어도 입지 않은 건지 상의가 헐렁이며 민 어깨가 드러났다. 여인은 대충 집게 핀으로 머리를 위로 묶어 올렸다. 세탁기로 돌리면 될 것을 손빨래를 하고 있다.
“최은수씨 되십니까.”
그러자 빨래를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정훈을 올려다보는 여인. 그녀가 확실하다. 수연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9년 만의 재회였다. 오래도록 애증으로 버텨온 심장이 무뎌질 만도 하건만 버림받은 그 당일처럼 요동을 친다. 하지만 얼굴에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는 진영.
“네... 누구세요...?”
모르는 사내 둘이 찾아왔음에도 당황하기는커녕 멍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정훈이 진영에게 눈짓을 한다. 이에 진영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다.
“김수연...”
그러자 여인의 동공이 흔들린다. 역시나... 그녀가 확실하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녀였다. 동영상 속 주인공이자, 자신을 떠났던 여인...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정을 애써 억누른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지만, 평정심을 찾고 눈을 뜬다. 무정한 눈이 여인을 훑어본다. 영상에서처럼 여리고 하얀 피부 위로 곳곳에 보랏빛 멍이 자리 잡고 있다. 한눈에 봐도 쉬운... 몸 파는 여자다.
“얼마면 되지. 얼마면 너를 여기서 데리고 나올 수 있지.”
그의 말에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는 느릿하게 깜빡인다. 진영의 말을 헤아리기 위함인 듯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1억... 이면 될 걸요...?”
냉큼 대답하는 그녀가 우습다. 정훈에게 그녀의 빚을 해결하고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려다 놓으라며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차로 향한다. 꼴도 보기 싫은 얼굴... 하지만 계속 그리워하던 얼굴을 보았는데, 온갖 짜증이 밀려온다.
최은수인지 나발인지, 이상한 이름으로 재회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회주의자인 모습... 곧바로 1억을 내뱉는 그녀가 소름이 끼쳤다. 끊었던 담배가 절실해진다.
그대로 차를 이끌고 자리를 뜨는 진영.
남겨진 정훈은 장기사에게 연락하여 위치를 얘기한다. 눈앞의 여인은 이모를 불러온다며 안으로 들어간다. 2층짜리 건물 내부를 둘러본다. 오래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바로 옆에는 미용실이 있는지 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러모로 오래 있기 싫은 장소였다.
‘이모라는 사람이 진짜 친척은 아니겠지...’
곧이어 여인은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중년의 여성과 함께 나온다. 어울리지 않게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중년의 여성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누런 이를 드러낸다. 자신을 쭈욱 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입을 뗀다.
“정말 얘 빚을 다 갚아줄 거예요?”
그녀의 눈에 욕망이 번들거린다. 어째서 진영은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일까. 1억의 가치가 있는 짓일까. 평소 근무하던 도시가 아닌, 이 공간에서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진영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내 임무임을 알기에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다.
“안녕하세요. SE 백화점 비서실장 박정훈이라고 합니다.”
여인은 물끄러미 정훈을 위아래 훑어본다. 빚을 물어보고 간 사내의 부하 직원인 듯 보인다. 이렇게 쉽게 1억이라는 빚을 갚겠노라 지시한 그 남자는 누구일까.
여인의 궁금증은 이내 하반신의 미약한 떨림으로 쉽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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