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에서 갓 제대를 했을 때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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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넘게 덕방리 읍내를 지키고 있는 덕방 전통시장에는, 퍽 유명한 순대 국밥집이 있다. 바로 우리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손맛 순대 국밥집인데, 증조할머니 때부터 이어진 무구한 역사와 기품 있는 맛으로 근방까지 꽤나 맛 집으로 이름 난 곳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군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제대를 하고 다시 돌아온 지금, 이젠 순대가 아닌 다른 걸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대체 뭐로 유명해 진걸까? 왜 나는 그 소문을 내 군대 선임들에게 들었어야 했을까. 그런 의문점들을 다 해소하기도 전에 나는 가게에 도착했다.
“할머니!”
“오야, 내 새끼~! 우리 새끼 이게 얼마만이고? 어디, 안 본 새 내 새끼 꼬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좀 보자!”
“할머니, 뭐하는 거예요! 으아!”
난데없이 할머니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나는 기겁을 하며 뒤로 도망쳤다. 아니 어릴 때도 저렇게 덥석덥석 남의 거시기를 만지려고 하시더니, 아직도 그러시면 어쩌자는 건지.
“와? 할미가 네 꼬추 그까이거 못 만지나?”
“아휴, 나도 이제 스물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러시면 어떡해요.”
내 질색에 할머니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덕방 시장을 호령하는 상가 번영회 회장님답게 여전히 호탕하고 유쾌하셨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가 은밀하게 말을 꺼내셨다.
“니 아직 작은 숙모 못 봤제? 얼른 방에 들어가 있어라. 숙모한티 인사하러 들어가랄게.”
“네? 아, 아녜요. 저 여기 있어도 돼요.”
“어허. 으데 사내가 한데 서서 기집애 인사를 받는단 말여. 얼른 들어가.”
“아니, 괜찮대도요. 인사를 하려면 제가 해야죠.”
“에라이, 썩을 놈. 알았다. 야, 미란아! 우리 장손 왔다! 얼른 나와 봐!”
“네, 네~ 나가요!”
할머니의 불호령에 안쪽 주방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앞치마에 젖은 손을 문지르며 나오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저 분이 내가 군대 가 있을 동안 우리 둘째 삼촌이랑 결혼 하셨다는…그….
“서, 성훈 조카님? 아, 안녕하세요.”
그녀의 첫 마디였다. 비록 말을 더듬긴 했어도, 목소리는 맑고 고운 편이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유순하게 생긴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부엌 안이 더웠는지 하나로 묶은 머리칼의 잔머리 몇 가닥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다.
쇄골 아래까지 풀어헤친 셔츠의 단추는 제법 가슴골까지 아슬아슬해 보여 조금 민망했다. 일하느라 정신없어 모르고 있는 거겠지만 그 모습은 뭐랄까, 약간 색스러워 보였달까. 나는 애써 그 사이에서 시선을 떼며 어설프게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양성훈이라고 합니다, 숙모님.”
“아……네. 반가워요, 조카님.”
숙모 역시 내가 내민 손을 잡아 악수를 하려는 그때였다.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숙모의 손이 빠르게 거두어졌다. 중간에서 할머니가 날카롭게 쳐낸 것이었다.
“어데! 니 조카한테까지 색기를 부리고 지ㄹ이고.”
“어, 어머님……저, 저는 그, 그런 게 아니라…….”
“얼굴 텄으면 됐제. 이제 들어가 봐라.”
할머니는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숙모에게 야멸차셨다. 물론 우리 엄마 생전에도 썩 다정한 시어머님은 아니셨다만,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네, 네……그럼.”
숙모는 내게 눈짓으로 마저 남은 인사해 보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소심해 보이는 뒷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내가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머니께 물으려던 그때.
“이 썩을 놈들아! 당장 우리 며느리한테서 눈 안 떼냐!”
할머니는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한테 우렁차게 호통을 치셨다. 옆에 있던 내가 놀라 딸꾹질이 나올 정도의 크기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게 느껴졌다. 마치, 정말 할머니 말대로 숙모만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 할머니이…….”
“아! 우리 장손 배고프제? 위에 올라가 있어라. 할미가 뜨끈한 국밥 곰방 말아갖고 올려다 줄게.”
“……네.”
할머니가 하도 등을 떠미는 통에 나는 숙모에 관해 더 묻지도 못하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건물이 하도 낡아서 계단에서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 벌어진 계단 틈으로 한 손님이 부엌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화장실은 그 쪽이 아닌데……? 나는 손님을 제지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섰다.
“저기요, 손님! 잠시만요!”
그는 내가 부르는 소릴 듣지 못했는지 안쪽으로만 향했다. 내가 걸음을 좀 더 빨리하는 그 순간, 갑자기 보이는 장면에 나는 움직임을 멈칫했다.
“흐흐, 임자. 여기 있당가? 여기 있는 거 맞제?”
“어머! 서 사장님. 지금 이 시간에 여길 들어오시면 어떡해요.”
남자의 부름에 숙모가 화들짝 놀라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방금 전 내게 인사를 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있다 밤에는 내가 야간 근무를 해야 쓰는디 워쪄. 지금 쪼까 빨리 끝내믄 안 되나?”
“아, 안 돼요! 어머니 아시면 야단 나셔요.”
“에이, 안 되는 게 어딨어. 하면 하는 거지.”
“서 사장님! 어머낫!”
남자는 잽싸게 숙모의 허리를 낚아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숙모의 치마를 들치고는 손을 넣었다. 숙모는 바르작거렸지만 남자의 앞섶이 그녀의 엉덩이에 문질러지는 것이 뻔히 보였다.
뭐야? 지금 여기서 그걸 하겠다고? 그것도 우리 숙모랑?
“오늘도 속살이 야들야들하네잉. 내가 이 맛을 못 잊어서 낮이고 밤이고 아주 미치겠다니께.”
“흣, 으응……그만……!”
숙모는 쪽방 기둥을 붙잡고 허리를 꺾은 채 야릇한 신음을 흘렸다. 왜 끝까지 거부를 하지 않는 거지? 나는 도무지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촤아악! 숙모를 안고 희롱하던 남자에게 물벼락이 떨어졌다. 물동이를 뿌린 할머니의 얼굴은 완전히 붉으락푸르락 했다.
“남의 낮 장사 다 말아 먹을 일 있어?! 볼 일이 있으면 밤에 오랑께!!”
“아, 아이쿠……!”
“룰이여, 룰. 아따 그것도 모르당가? 낮에 우리 며느리 몸에다 손가락 하나라도 대는 놈은 다 뒤지는 거여. 야, 미란이 너 뭐허냐! 싸게 안 들어오냐!”
할머니의 호통에 숙모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고, 사내 역시 얼굴을 가린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쪽방이 있는 그 공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지고 말았다.
룰……? 볼 일이 있으면 밤에 오라고? 나는 할머니가 하신 말의 진짜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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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 않게 발소리를 죽여 2층 방으로 올라온 나는 방금 내가 본 장면들을 곱십으며 천천히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성훈아! 밥 먹어라!”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역시 할머니가 직접 말아주신 순대국밥의 맛은 여전했다. 덕분에 내가 본 게 뭔지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든든하게 밥을 먹고 부모님들이 계신 산에 오르기 위해 가게를 나서려는 그때였다.
“조, 조카님, 어디 가요?”
소심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자 방금 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숙모가 나를 힐긋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남자에게 꽤 스스럼없이 희롱 당하던 모습도 같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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