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긴 정말 대단한 남자예요!"
나는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걸어나오는 그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의 몸은 사십대 중반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팽팽한 싱그러움을 지니고 있다. 뱃살이 조금 나온 게 옥의 티라면 티겠지만 그 외의 어떤 부분도 나에겐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그에겐 중년만이 지닐 수 있는 이상야릇한 힘이 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용솟음쳐 올라 스스로 부러질 것 같은 통제불능의 젊은 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년의 힘은 강약을 조절하는 여유가 있다. 힘의 묘미를 얘기할 때, 강약의 절묘한 조합이란 가히 감칠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소리로는 스테레오와 같고, 색으로는 컬러와 같다. 모노와 흑백의 세계가 주는 단조로움을 어떻게 이것에 비할 수 있을까?
거기에다 그의 힘에는 외곬로만 치닫는 한 방향의 힘이 아니라 잠시 머물러 주는 공백이 있다.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은 정적, 그 거친 열기 속에서도 새로운 환희의 계곡을 거침없이 훑어 내리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줄 아는 여유, 그의 그런 절제력이 날 아예 까무러치도록 감질나게 해준다.
또 하나, 그를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만의 넘치는 자신감이다. 세상을 살아온 지혜는 한창 물이 올라있으며 사물과 인간을 대하는 그의 시각에는 만사를 꿰뚫어 보는 노련미가 배어있다. 만물의 원리에 그러하니, 여자에게는 어떠할까? 나는 철저히 그의 카리스마에 의해 포박되어있다. 아무리 뛰어봤자 그의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눈빛 아래 나의 모든 감각은 흐늘거리듯 녹아 내린다.
나는 그런 그의 장악력에 미칠 것 같은 흥분을 느낀다. 그를 "나의 완벽한 통치자"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의 섹스는 나의 호흡을 잠시 멎게 할 만큼 강렬하고 매끄럽다. 그의 애무는 매번 날 극치의 하늘 위를 비행하게 한다.
그는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성의 세계로 날 인도해 준다. 결혼 후, 지금의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어떠한 외간남자와도 자 본 적이 없으니 남편과의 관계가 섹스의 전부 인줄로만 안 것은 당연했다.
사실, 나는 섹스에 관한 한 결혼 전이나 후나 별다른 환상이나 기대를 가진 적이 없었고 실제의 부부생활 속에서도 우리의 관계는 지극히 의무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까무러칠 정도의 절정감이란 실체 없이 부풀려진 허상이거나 "과장"을 기본으로 하는 음담패설의 "구라"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부부관계가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별난 게 있겠냐는 생각으로 주위의 얘기들을 일축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어느 날 만취한 상태에서 한 친구에게 결혼 후 지금까지 오르가즘이란 게 뭔지도 모를 만큼 무미건조한 우리 침실 얘기를 은연중에 내비쳤을 때, 그녀는 대번 정색하며 남편과 함께 진료를 받아보라는 권고까지 하였다.
사실, 그런 권고를 받기 전에도 내 스스로 불감증이 아닐까 싶었던 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워낙 일의 즐거움에 빠진 나에게 그런 생각들은 부질없는 한때의 망상일 뿐이었다. 그런 것쯤 몰라도 우리부부는 늘 행복했고 나는 나대로의 일에 만족하며 살아왔으니 무엇하나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를 만나고 난 후, 나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오르가즘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유사한 조악품이거나 가짜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속된 말로 섹스의 참 맛을 알게 된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부 이슬람권 국가의 여성들처럼 성감을 느끼게 만드는 클라이토리스를 아예 어릴 적부터 할례 시켜 영원히 섹스의 즐거움을 모르게 하면 몰라도 교접의 쾌락을 만드는 근원이 멀쩡히 여성 성기에 붙어 있는 한, 섹스를 즐겨야할 권리는 여성에게도 당연히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한 가짜에 농락 당하면서도 그것이 가짜인지를 모르거나 설혹 그것을 알더라도 리펀드를 요구할 방법을 몰라 그냥 산다는 거야! 병ㅅ 같은 년들….
헬쓰 멤버인 아래 층 명준 엄마의 조크가 더욱 가슴 저미게 와 닿는다. 그렇다. 나의 섹스에 관한 한 나의 감각은 새로 태어났다. 그의 감미로운 자극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기분이다. 나는 내 앞에 새롭게 열려진 신천지의 황홀함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진다. 섹스야말로 내 존재의 이유를 확인해주는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아아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나의 뒤늦은 개안은 아직도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은 나의 성욕을 마음껏 자극한다. 나는 그의 불같은 입맞춤을 사랑한다.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용암같이 뜨거운 그의 애무를 사랑하며, 섹스 할 때 보여주는 그의 다이내믹한 표정과 몸짓을 사랑한다.
무언가를 관통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위를 향해 불끈 솟아오른 그의 성난 남성이 갖은 체위로 열려있는 나의 몸 속을 마구잡이로 유린할 때, 땀에 젖어 꿈틀거리는 그의 털복숭이 가슴 근육을 보면 나는 아예 물어 뜯어주고 싶을 정도로 미쳐버린다.
"새삼스레 아부는?…."
허리에 감은 목욕 타월을 소파 위로 던지고는 침대시트 안으로 들어오며 그가 말한다.
"아니에요, 진심예요"
나는 정색하며 말한다. 나는 그가 나의 진심을 말 그대로 믿어주지 않는 것 같을 때가 가장 불만스럽다. 나는 남자들이 여자에게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을 채신머리없거나 경박한 행동쯤으로 여기고 진지한 얘기도 농담처럼 하는 버릇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언젠가 그런 버릇이 여자 앞에서 똥폼이라도 잡아야 마음이 놓이는 남자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지만 그 원인이 무어든, 나는 그의 유들거리는 버릇만은 고쳐주고 싶다.
"하하, 미야가 그러니 내가 몸둘 바를 모르겠잖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나의 젖가슴에 머리를 묻더니만 배시시 기어 나온 유두를 한 입에 삼켜버린다. 그의 공격은 늘 이렇듯 거칠다.
"어머!"
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웅크린다. 나는 그 순간, 그의 입에 물려 펄떡이는 새우가 된다. 그러나 그의 노련한 입놀림은 조금도 내가 도망갈 틈을 주지 않는다.
나의 유두를 지긋이 눌러대며 빨아 당기는 그의 두툼한 입술과 혓바닥의 감촉이 너무나 좋다. 풍만한 젖무덤 전체가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짜릿함, 조금 전 그렇게 격렬했던 정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의 아래가 금새 흥건해진다. 아무래도 나는 천성이 뜨거운 여잔가 보다.
"어때? 난 당신 젖꼭지가 너무 사랑스러워,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체리 같거든…"
그가 나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물기 젖은 머리 결을 뒤로 쓸어 넘기며 씨익 웃어 보이는 그의 매력, 그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어느 누구도 나 대신 그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나는 그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신감의 배경이 뭐냐고? 그건 간단해, 그와 함께 할 때마다 그의 바디랭귀지를 매번 그렇게 느끼니까,
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미야 너 밖에 없어!라고….
웃기지?
그렇다. 난 매사를 감(感)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 그의 운명적 등장과 같은 경우, 나의 느낌은 선택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여 왔다. 가장 비합리적일 것 같으면서도 가장 합리적인 근거가 되어온 나의 휠링,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느낌을 통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징후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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