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원한 바람은 들녘에 푸른 나무들 사이로 더없이 불었다.
초가을…. 아직 낮 기온은 여름이 온기가 채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저녁이면 낮에 달구었던 지열로 몸은 시원한 맥주를 찾아 헤맸고 저녁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술에 취해 더위를 잊으며 잠이 들곤 했다.
우리 집은 가족이 많다.
다른 집처럼 2대 3대가 모여 살아서가 아니라 형제가 이상하게 얽혀서 살고 있다.
나와 아내, 처제, 처제 친구, 나의 남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다.
처제와 처제 친구는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관계로 저녁 늦게 귀가를 하고 내 동생은 가끔 불쑥불쑥 들어온다.
자기는 사업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무슨 일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사건의 시작은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 밤에 시작되었다.
`띵동` `띵동` `쿵쿵쿵` 주르르르…."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결에 깨어 비몽사몽 한 눈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처제가 술에 만취되어 입가에 침을 흘리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에구…. 오늘도 술에 떡이 되었군…. 잠 다 잤다….`
그랬다.
처제는 술만 마시면 이상한 버릇이 있다.
다름 아닌 옷을 모두 벗고 이방 저 방을 걸어 다니며 아무 데서나 잠을 자는 정말 좋다고 해야 하는지 귀찮다고 해야 하는지…. 오늘도 잠을 설칠 것을 생각하니 잠이 깨는듯했다.
그런데 처제 친구가 보이질 않았다.
문밖에도 없었다.
둘은 그렇게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데 그날은 보이질 않았다.
일단 처제를 질질 끌어서 처제 방에 던져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1층 현관 난간에 빨래를 널 듯이 널브러져 있는 처제 친구…. 가영이. 처제와는 3살 차이가 난다.
처음 연애할 때부터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결혼해서도 갈 데가 없다며 신세를 지겠노라고 들어와 살더니 어느 날 군더더기를 달고 들어왔다.
처제 친구는 정말 내가 싫어하는 타입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날라리 중에도 상 날나리. 남자를 갈아치우는걸 밥 먹듯이 하고 정말 끼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몸매가 좋아서인지 남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 그런 여자애다.
더구나 지금은 25살…. 정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탄탄한 몸매를 지니며 눈웃음이 매혹적이다.
눈웃음을 치며 애교를 부리면 안 넘어갈 남자가 없을 지경이다.
구토했는지 입에서는 안주와 술이 엉켜 여기저기 묻어있고 앞가슴에는 토한 흔적이 역력했다.
조금은 비위가 상했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또 질질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에구 내 팔자야…. 이눔 지지배들 시집이나 얼른 가지. 이게 무슨 고생이야…. 으으….`우리 집으로 들어 온 지 이제 고작 2주가 되었는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눔 지지배를 그냥 방에 던져놓으려니 냄새가 너무 났다.
할 수 없이 화장실로 데려가 욕조에 던져놓고 물을 틀었다.
다 큰 지지배의 옷을 벗기자니 나중에 오해 살 것 같아 그냥 물만 틀어놓고 방으로와서 잠자리에 들려는데 잠자다 깬 목소리로 "지혜 들어 온 거야?"
"어"
"오늘도 술 마신 거야?"
"어"
"방에 재웠어?"
"어"
"가영인?"
"물소리는 뭐야?"
"어…. 가영이가 토해서…. 냄새가 조금 나서 욕조에 담가놨어…."
"당신이 이따가 빨아서 널어줘…."
"음…. 몰라…. 나 졸려…." 아내도 이제는 귀찮다는 듯 돌아 누우며 모든 걸 포기한 듯 그냥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으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세에에에엑` 물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갔다.
욕조에 널브러져 있는 가영이를 보는 순간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두고 들어가자니 위험할 것 같고 그랬다고 씻기자니 그렇고 정말 난감했다.
물속에 잠길 것 같아 불을 끄고 가영일 욕조 밖으로 끌어냈다.
정말 술 취한 사람을 다루기란 정말 힘이 들었다.
귀찮은 생각에 난 그냥 욕실에 두고 돌아서는 순간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처제가 옷을 홀라당 벗고 눈은 반쯤 감긴 상태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가에는 침과 구토의 흔적을 보이며 나를 게슴츠레 쳐다보다가 변기에 앉아볼 일을 보는 것이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이 놈의 집안은 도대체가 어떻게 굴러먹었길래 이런 거야!!! 으그…. 지겨워!!` 나는 그냥 둘을 그렇게 화장실에 두고 방으로 와 문을 잠그고 자리에 누웠다.
알아서 자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연애 시절. 아내는 동생을 소개해 달라는 나의 부탁에도 몇 번이고 꺼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처가에 점수를 얻어야겠다는 내 생각에 나는 처가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요량으로 처제를 만나서 친해 놀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집사람은 몇 번이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결혼하면 평생을 볼 텐데 뭐가 그리 성급하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우연히 처제를 길거리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젊고 싱싱한 나이여서 그랬는지 얼굴에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피부가 정말 보기 좋았다.
밝게 웃을 땐 잇몸까지 드러나며 목소리도 약간 비음이 들어간 소리여서 애교도 있어 보였다.
"너가 지혜니?" 이렇게 우리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맑고 순수해 보이는 아이가 왜 술만 마시면 180도 돌변하는지…. "지혜야~?"긴 머리를 휘날리며 짧은 미니스커트에 점퍼 차림을 한 정말이지 눈에 확~ 들어오는 여자애…. 가영이였다.
처음 보자마자 형부~ 형부 하며 착 달라붙어서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졸라대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생 같았다.
그 이후로 가끔 전화해서 술 사달라고 졸랐다.
그럴 때면 언제나 집사람은 적극적으로 말리는 자세였고 나는 술을 같이 마셔야 금방 친해진다고 그런 처제와 친구가 좋았는데……. 나의 오판이었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 자명종은 어느덧 7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집사람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서 일어나 아침 지으라는 무언의 손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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